統一教會 事件 통일교회사건 1955.7.4.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 통일교
1996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2020년 하늘부모님 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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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教會 事件 통일교회사건 1955.7.4.
이화여자대학교의 몇몇 학생들과 교수들은 1955년 신문에 보도된 문선명 교회의 섹스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도 몇몇이 연루되었다.
▲ 이 사진은 1955년의 본부 교회에서의 예배 바로 전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세 개의 문들이 있는 집’ 으로 알려진 이 본부는 서울 북학동에 위치했다. 유효원 (劉孝元) 이 지팡이를 짚고 서있다. 문선명은 옆집에 개인 방을 두고 있었다. 거기서 유신희 (劉信姫) 와 다른 많은 여자들이 문선명 (文鮮明) 에게 ‘복귀’ 를 받았다.
▲ 1955년에 사용되었던 ‘세 개의 문들이 있는 집’ 의 사진. 왼쪽에서부터, 옥세현 (玉世賢) 과 강현실 (姜賢実). (두 여성들 모두 한때 여섯 마리아의 일부였다.) 문선명은 강현실을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결혼시켰다.
▲ 1955年北鶴洞にあった最初の本部教会 – 玉世賢(左)と 姜賢実(右)
1955년 즈음 최선길 (催先吉) 의 사진. 그녀는 1925년 3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문선명과 1944년 5월 4일에 결혼하였고, 1957년 1월 8일에 이혼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1946년 4월 2일에 한 명의 아들 문성진 (文聖進) 을 낳았다. 출산을 도운 산파는 당시 문선명이 다니고 있던 김백문 (金百文) 의 교회인 이스라엘수도원 (이스라엘修道院) 의 성도였다. 김백문은 한국의 또다른 피가름 성의식 메시아이다. 최선길은 장로교인이었고, 김백문의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남편이 김백문의 교회에 다니는 것과 집안의 돈을 헌금하는 것 등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선명의 성적 행각을 경멸했다. 그녀는 문선명이 그녀와 그들의 2달박이 아들을 버린 것 (문선명이 사전 언급 없이 1946년 6월에 평양으로 갔을 때), 그의 계속된 간통, 그의 중혼으로 인한 1948년 투옥, 그들의 결혼생활 중 문선명이 가진 혼인외 사생아들, 이화여대 스캔들과 그의 메시아 사상 등을 모두 참아내야만 했다. 문선명은 그녀에게서 문성진을 뺏었으며, 문성진을 다른 성도들의 보살핌 아래 두었다. 최선길은 2008년 11월 16일에 사망했다.
1955.5.26 경향 신문 京郷新聞
文敎部에實情調查呼訴
「邪敎」問題로除籍當한梨大生
문교부에 실정조사호소 [사교] 문제로 제적당한 이대생
학원전통신앙인 감리교에 배치되는 사교를 믿는다는 것으로 앞서 이화여자대학에서 제적처분을 당한「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서울교회에 나가는 이대 (梨大) 학생은 二十五일 문교부에 억울한 제명처분을 호소하는 한편 통일교회의 사교여부를 밝혀주는 동시에 일방적인 학교의 처사를 조사하여 복교케 하여 줄 것을 진정키 위하여 시도 하였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이화대학에서도 통일교회가 사교임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하며 만일 배움의 학도로서 그릇된 신앙을 신봉하는 점을 지적하지도 못하고 다만 전기와 같은 이유로써 제적처분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들은 二十三일 총장에게 복교하여 줄 것을 탄원한바 있는데 총장은 과거를 논할바 없다고 이를 일축하고 제명처분에 대하여는 부동한 학교의 방침이라는 것으로 이번 문교부에 애소한 것이라 한다.
▲ 1955년 이화여자대학교 (梨花女子大學校) 캠퍼스에서의 유경규 (劉景圭) 와 황환채 (黄煥菜). 이 두 사람은 연세대학교 (延世大學校) 에서 성추문으로 인해 퇴학당한 남학생들이었다. 사진의 배경은 이화여대 캠퍼스의 본관이다. 이화여대는 미국감리교단의 지원을 받았다.
▲ 1910년에 태어나 1998년에 사망한 양윤영 (梁允永) 교수는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양쪽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 梨花女子大學校と延世大学の音楽教授であった梁允永。(1910 ~ 1998)
1955.5 …보
梨大에除籍沙汰 邪敎徒라고敎授學生17名
이대에 제적사태 사교도라고 교수학생 17명
▲ 퇴학을 당한 후, 이 두 남학생들은 1955년 5월 23일에 김활란 (金活蘭) 총장을 만났다. (사진의 윗줄 왼쪽부터) 서명진 (徐明鎭), 이계순 (李桂淳), 사길자 (史吉子), 지생련 (다른 이름은 이말숙 또는 지말숙 (池末淑)), 박영숙 (朴榮淑), 강정원 (姜貞遠) 그리고 정대화 (鄭大和).
(사진의 아랫줄 왼쪽부터) 최순화 (催淳華), 임승희 (林承姫), 김정은 (金正恩), 신미식 (申美植), 그리고 박승규 (朴承圭).
▲ 김활란 이화여대 총장과 김옥길 교수(앞에서 부축받는 이가 김활란, 뒤편에 성서를 왼팔에 낀 이가 김옥길), 이화여자대학교 본관 입구 계단에서 1959
▲ 김옥길 (金玉吉) 은 1955년 추문 당시 학무과장이었다. 1961년부터 1979년까지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총장이었다.
1955.7.5 경향 신문 京郷新聞
The Ministry of Culture and Education recognizes the Unification Church as a wicked religion (or cult) while the Unification Church denies it.
문화교육부는 통일교회를 사악한 종교 (邪敎) 로 인정하고 통일교회는 이를 부정한다.
統一協会は否定を続けているが、文教部は、統一協会を「邪教」と認識している。
▲ 최순화가 문선명의 바로 앞에 서 있다. 왼쪽은 최원복 (催元福) 이며, 오른쪽에 서있는 것은 김영운 (金永雲) 이다. 이 두 이화여대 교수들은, 동대 세 명의 다른 교수들과 함께, 이화여대 학생들이 문선명의 교회에 참석하고 문선명에게 피가름 복귀를 받을 것을 권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문선명과 관련된 것으로 인해 기독교대학인 이화여대로부터 제명당했다.
문선명은 최원복을 부처와 결혼시켰다.
▲ 1955年頃に撮影されたこのグループの写真では、催淳華が文鮮明の前に立っています。文鮮明は元々催淳華の姉・催淳實と結婚し、その7年後に催淳華と結婚するつもりでした。しかし、催淳實は1959年、文鮮明と結婚する直前に統一教会を脱会しました。
文鮮明は、聖書の中でのヤコブ (Jacob) のコースを修復することを自分の役目だと主張した。 ヤコブの二人の妻レア (Leah) とラケル (Rachel) になぞらえて、文鮮明は催淳實をレアの役に、催淳華の妹はラケルの役にしようとした。
左端が催元福教授、右端が金永雲教授です。彼らは二人とも梨花女子大學校の教授で、血分けの教義を信じていました。この大学には、文鮮明の教会に、多くの学生の女子学生を勧誘するのに役立った教授が5人いました。
1955.7.6 경향 신문 京郷新聞
不法監禁等의嫌疑 統一敎會敎主를拘束
불법감금등의 혐의 통일교회교주를 구속
京郷漫評 경향만평
統一敎会/會 世界基督教統一神霊協会.
◇統一敎會에메스◇
간판을 보고믈어와! 女大生歡迎인데…익크
통일교회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통일교회 엠.에스◇
간판을 보고 들어와! 여대생만 환영인데…이크
1955.7.6 서울일보 ソウル日報 Seoul Daily News 3頁
Sun Myung Moon was “Misleading women into fornication through eloquence.”
문선명은 “웅변을 통해 여성들을 음행으로 그릇 인도하고” 있었다.
文鮮明 は「巧みな話術で女性を惑わせ、姦淫に導いた」
▲ 동숙 (사진 오른쪽) 은 김원필의 아내를 전혀 닮지 않았지만, 그녀는 문선명 (사진 왼쪽) 을 닮았고 그의 딸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참 자녀” 로 등재되었습니다. 동숙은 1955년 3월 7일에 태어났습니다.
▲ 文鮮明と金東淑は顔が類似しているところがある。金東淑は1955年3月7日に生まれた。
▲ 1961년 1월 즈음 김동숙 (金東淑) 이 문예진 (文譽進) 을 바라보고 있다. 문예진은 문선명과 한학자 (韓鶴子) 의 첫 자녀였다. 아래 사진 또한 1961년 1월 즈음의 사진이다.
▲ 1961年1月頃、文譽進を見つめる金東淑(当時6歳)。
▲ 서울 청파동 교회 바닥에 앉아있는 김동숙의 사진이다. 이 사진의 문선명은 아마도 문예진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선명은 문예진의 탄생을 기리는 의식에 김동숙이 참여할 것을 김동숙에게 요청했다. 김동숙은 문선명의 가족사에 있어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2012년에 그녀는 문선명이 죽기 직전 병원을 방문했으며, 그해 9월 ‘참자녀’ 로 등재되었다.
▲ 1961年1月、青披洞教会の床に座る金東淑。文鮮明が抱く子どもはおそらく文譽進。文鮮明は 金東淑に、文譽進が生まれる直前に行われたセレモニーに参加するよう求めた。
▲ 김활란 (金活蘭), 영어 이름은 헬렌 킴, 1939년부터 1961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1955.7.6 동아일보 東亞日報
邪敎與否는『노 | 탓취』
不法監禁嫌疑 基督教統一敎會의『文』敎主拘束
사교여부는『노 | 터치』
[연세대학교 여학생] 불법감금혐의로 기독교통일교회의 『문』교주 구속
한때 종교계에 파문을던진『世界基督 (세계기독) 敎 (교) 統一神靈協會 (통일신령협회)』 교주 文鮮明 (문선명) (三六 (삼육)) 씨는 四 (사) 일『병역기피』『불법감금』등혐의로 치안 국에구 속되었다『세계기 독교 통일신령협회』는 정교 (正敎 (정교)) 냐 사교 (邪敎 (사교)) 냐하는문제 로 종교계에 파문을던졌을뿐더러 이『교』를 믿었다는이유로 이대 (梨大 (리대)) 에서는학 생을 제명 처분 까지하여 한때 사회에 물의 를일으킨바 있었던것인데 이번 교주 가구속되어 다시한번 주목을끌고있다.
경찰의 조사에의하면文 (문) 씨는 본적을 平壤 (평양) 에두고 一 (일), 西 (사) 후퇴당시 남하하였다는데 병적수속을 밟고 있지않을뿐더러년령은 三 (삼) 십大 (륙) 세를 四 (사) 십三 (삼) 세로 인상하였다고하며 신자 文英一 (문영일) (假名 (가명) = 二二 (이이) = 世大生 (세대생)) 양을 三 (삼) 일 간이 나 불법 감금하고 신교를 강요한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치안국 당국자가 말하는바에의하면 文 (문) 씨의 구속문초는 어디까지나일반형법위반혐의로 취급하고 있다고하며 교리교측문제에 대하여는전연『노 |, 텃취』할것이라고한다.
▲ 박마리아 (朴瑪利亞) 는 대한민국의 부통령 이기붕 (李起鵬) 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1955년 이화여자대학교의 부총장이었다.
1955.7.7 경향 신문 Kyunghyang-shinmun
두꺼비 Toad
안회섭 Ahn Wi-seob [cartoonist]
처음보는 여잔데? (会ったことのない女性だけど?)
통일! 통일! 통일교회!(統一! 統一! 統一敎會! )
1955.7.7 서울일보 ソウル日報 Seoul Daily News
“Four married women were violated” by Sun Myung Moon or Unification Church members.
문선명이나 통일교회 회원들에 의해 “네 명의 기혼 여성들이 강간당했다”.
文鮮明または統一協会により「4人の既婚女性が性的暴行された」
▲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을 구원시키는 것은 문선명에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 復帰の仕事は文鮮明を疲労させた。
1955.7.7 동아일보 東亞日報
「하느님」아들行勢
弄絡當한婦女수두룩
注目끄는統一敎會 『文敎主 』行狀
「하느님」아들 행세
농락당한 부녀자 수두룩
주목 끄는 통일교회『문교주』행장
작보 = 교주의 구속으로 아연 세간의화제꺼리로『크로–즈•엎』된 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의정체는무엇이며 文 [문] 씨는과연 부녀자신도들의정조까지 유린하였는지당국에 적발된 혐의는『병역기피』『불법 감금』두가지로 밝혀져있을뿐인데 文씨와그교를 싸고도는 각종정보를종합해보면 ―
◊ 敎理說敎方式 [교리설교방식] = 동교에서는 七십二 [칠십이] 시간 (滿三日間) [만삼일간] 에걸쳐 새로가입한 교인들에게 교리의 설교를한다. 설교는 교주文씨에의하여 행하여지는것으로서 매주『월요일』상오열시부터『목요일』 상오열시까지계속된다.
만약설교도중 文씨의교리설교에 의아심을가 지게되어 퇴장을 원하는 신도가있으면 교주文씨는 엄숙한 어조로『퇴장하면죽습니다』라고말하여 퇴장을하지못하도록하였다. 또한文씨는『한국민은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이며 평양은세계의예루살렘이다』라고 전선하고『자기가 하느님의아들이니자기와 육체관계를하면教世主[구세주]를 낳는다』고 설교를하였다.
◊ 獵色行爲 [렵색행위] = 文씨는능변가로서 독실한신도라고 지목되는 여자들이 발견되면 자기거처 (同協會內單間房) [(동협회내단간방)] 이외의장소로 유인하여 정조를 유린해왔다고한다.
피해자로 단정할수있는 四 (사) 명의여자는 三 (삼) 십 대를넘은 중년유부녀 (中年有夫女) [(중년유부녀)] 들로서 그들의가정은 중류이상에 속하고있다. 그중의한사람인 金順昌 [김순창] 假名 [가명] = (三六) (삼육) 여사는 남부럽지않은 상류가정의 주부였었으나 文교주의 제물이된후부터는 남편의버림을받는 운명에놓이게 되었다.
◊ 同協會財政關係 [동협회재정관계] = 현재의협회건물은 세로쓰고 있는것이다. 그들은二(이) 백五 (오) 십명 (서울) 의신자들로부터 성금(誠金)을받으나 그금액은 적은것이기때문에 시내의 풍경을촬영한『푸로마이드』를 대량만들어 시내도처에서 판매하고있다.
◊ 組織狀況 [조직상황] = 釜山[부산], 大邱[대구]등지에 지부가있고『서울』내에 본부를두고있는데 신자수는 각각二 (이) 백五 (오) 십명정도로 도합七 (칠) 백여명에 달하고있다 이를성별로보면 남녀 반반씩인데 교육정도는 상당히 높은수준에 있다고한다.
日本語で :
「七・四事件」を報道する新聞記事(1955年7月7日付『東亞日報』)
彼は自らを「神の子」だと偽りました。
性的虐待を受けた多くの女性がいます。
統一教会の指導者・文鮮明の挙動は、注目を浴び続けています。
続報 = 教主の逮捕に伴い、最近注目を浴びている、世界基督教統一神霊協会の正体とは?果たして文氏は、被害者にそう認識されることなく、性的暴行を行ったのだろうか?当局は、文氏に対する二つの容疑を開示した。一つ目は「兵役忌避」、そして二つ目は「(延世大学女子学生の)不法監禁」だ。文氏に関する包括的な議論と一般からの批判内容の後は、この宗教団体についての情報を紹介する。
◊敎理說敎方式 [教義説教方式] = 新しい信徒は、72時間(満三日間)にわたり、教義の説教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説教は、教主文氏によって行われる。毎週月曜朝10時に開始され、木曜朝10時に終了する。説教の途中で、教義に疑いを持ち、席を立とうとすると、教主文氏は厳粛な口調で「退場したら君は死ぬ」と言い、足止めする。また、教主文氏は「韓国人は神から選ばれた民で、平壌は世界のエルサレムである」と言い、自分は「神の子であり、女性は自分と肉体関係を結ぶことで教世主を生む」と説いた。
◊獵色行爲 [リョプセク行為・猟色行為] = 文氏は話術にたけている。女性が彼を心から信用しているとわかると、自分の住居(協会の小さな建物の一室)に誘い、暴行するという。被害者と断定できる女性は4人おり、全員が中年(30歳以上)で、夫・娘がいる。また、全員が中流以上の家庭の女性である。被害者の一人の金順昌 キム・スンチャンさん(仮名)は36歳である。彼女はきちんとした、裕福な上流階級の主婦だった。しかし、教主文氏の誘いに嵌まり、夫に捨てられる運命となった。
◊同協會財政關係 [同協会の財政関係] = 現在協会は建物を賃借している。教会は、ソウルにいる250名の信徒から寄付を受けているが、それは大した額にはならない。そこで信徒は(商売を)始めた。下町の風景を撮影したブロマイドを印刷し、市内の至る所で販売するのだ。
▲ 김명희 (金明熙, 우측) 은 연세대학교 (延世大學校) 의 학생이었다.
▲ 1950년대 중반, 이화여자대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들과 함께 있는 문선명 (文鮮明). 세 명의 학생들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제명당했지만, 추후 다른 대학교에서 졸업했다. 최원복 (催元福) (1916-2006) 은 중간의 줄의 좌측에 있으며, 옅은 색의 코트를 입고 있다. 최순화 (催淳華) 는 앞줄의 우측에 있다. 그녀는 문선명과 박사무엘을 낳았다. 박사무엘은 1966년 1월 28일에 태어났으며, 이는 문선명이 한학자 (韓鶴子) 와 결혼한지 6년 후의 일이다.
1955.7.14 동아일보
六名을拘束送廳
「統一敎會」의文教主等
여섯명을 구속송청
「통일교회」의 문교주 등
기보 = 그동안 치안국에서 수사중에있던 세칭『世界基督敎神靈統一協會事件 (세계기독교신령통일협회사건)』은 수사에일단락을 보아 작십三 (삼) 일관련자六 (륙) 명이 一 (일) 건서류와함께 서울지검에 구속송청되었다
그런데 동사건의관련자들은 현재까지는『병역법위반』『문서위조』『보안법위반』등혐의죄 명으로 문초를받고있으나 一 (일) 수사관계자의말에의하면 이밖에 교주文 (문) 씨와 여신자와의간통사건이 七 (칠) 건이나 확증이드러났다고하며 다시『간통사건』으로서의 새로운수사가 전개될것이예측되고있는데 현재까지는 간통관계여자신자의 남편으로부터『고소』가없어 (간통은『친고죄』즉피해자의 고소가있어야입건된다) 수사를진행못하고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더욱 이『간통사건』의성립여부로 이것이『사교』냐 아니냐하는문제에대한기준도 제공될것으로서 앞으로의검찰측수사귀추가 주목되고있다
♢關聯者名單 (관련자명단) (拘束送廳 (구속송청))
▲ 文鮮朋 (문선명) (敎主(교주)) = 不法監禁 (부법감금), 兵役浤違反 (병역법위반)혐의
▲ 金元弼 (김원필) = 國家保安法違反 (국가보안법위반), 兵役法違反 (병역법위반)혐의
▲ 劉孝敏 (유효민) = 兵役法違反 (병역법위반)혐의
▲ 劉孝永 (유효영) = 兵役法違反 (병역법위반)혐의
▲ 劉孝元 (유효원) = 文書偽造 (문서위조)혐의
▲ 崔淳實 (최순실) = (女(여))음행매개혐의
1955.7.15 경향 신문
六名拘束 送廳 統一教會 事件
육명구속 송청 통일교도 사건
통일교회 교주 문 (文鮮明=三六) 씨 외 五명의 교회간부를 구속취조 중이던 치안국특수 정보과에서는 수사에 일단락을 짓고 피의자 전원六명을 十三일 하오 검찰청에 구속 송치하였다
▲ 文鮮明 (教主) = 兵役法違反 • 不法監禁
▲ 劉孝元 (幹部) = 公文書偽造
▲ 劉孝敏 ( // ) = 國家保安法違反
▲ 劉孝永 ( // ) = 兵役法 맟 國家保安法違反
▲ 金元弼 ( // ) = 兵役法違反
▲ 催淳實 = (女信徒) 淫行媒介
이들은 서울지검 강 (姜瑞龍) 검사의 취조를 받게되었다 한다
1955.7.31 동아일보
文敎主等起訴 統一教會事件
문교주 등 기소 통일교회사건
그동안 서울지검姜瑞龍 (강서용) 검사담당으로 문초를받아오던『통일교회사건』관계자 文龍明 (문용명) (교주|一名鮮明 (일명선명)) 劉孝元 (류효원) 劉孝敏 (류효민) 金元弼 (김원필) 劉孝永 (류효영) 등五 (오) 씨는 二 十九 (이십구) 일하오『병역법위반』및『징발에관한특별조치령위반』혐의죄명으로 구속기소되었다 그런데 그동안서울지검에서는 통일교회교주 文龍明 (문용명) 씨에대한『간음사실』여부에 대하여예리한수사를 계속하여왔던것인데 피해자로알려지고 있는 당사자들은물론 그남편들로부터의 고소가 없는관계로 사회의이목을 끌게하던 동간음사실은 입건되지 않|은채 이번병역관계사실로만 기소된것이라한다
1955.8.3 中央日報 중앙일보 ChoongAng Ilbo
「愚婦X文教主 = 所謂 陰陽심판」
社会戯評
「統一教主と姦淫行脚」
「愚婦X文教主 = 所謂 陰陽審判」
▲ 또 다른 1955년의 관련자. 김명희 (金明熙) 는 성추문에 역시 연루된 연세대학교 (延世大學校) 의 학생이었다. 이 사진에서 그녀는 1959년 10월 2일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그녀의 아들 문희진 (文喜進)과 함께 있다. 김명희는 임신 중에 양윤영의 서울 집에 머물렀다. 문선명은 그의 아들의 출산을 위해 그녀를 일본으로 보냈다. 김명희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문선명에게 위험요소였다. 문선명은 1946년 평양에서 수감되었던 것처럼 다시 풍기문란으로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에 의하면, 문선명은 1948년에 중혼죄로 감옥 신세를 졌다. 문선명은 일본에 있던 김명희에게 편지를 쓰곤 했지만, 돈은 전혀 보내지 않았다. 문희진은 도쿄에서 1955년 8월 17일에 태어났다.
문희진 (文喜進) 은 1969년 8월 1일 타고 있던 열차가 충청북도 매포역에 도착하는 와중 열차 밖으로 몸을 내밀다가 사망하였다.
▲ 사진은 1965년 1월 5일 청파동 교회에 있는 문선명과 문희진 (文喜進).
1955.9.21 동아일보 東亞日報
어제첫公判 統一教會 事件
어제첫 공판 통일교회 사건
▲ 사진은 공판정에나선피고들 X 표가文 (문) 교주
『통일교회』 교주 文鮮明 (문선명) (본명 = 文龍明 (문용명) = 三六 (삼륙)) 씨에 대한 서울지법제一 (일) 회공판은 작二 (이) 십일상오열시반 서울지법제四 (사) 호법정에서 尹學老 (윤학로) 판사담당 姜瑞龍 (강서용) 검사관여로 개정되었는데 이날법정은『통일교』신자로보이는 다수의 여성들로초만원을 이루었다
한때 많은『간통』사실이있다고 화제에 올랏던文 (문) 피고는 동혐의사실에대한 관계자들의 고소 가없어 결국 이날공판정에는 오직 『병역법위반』(연령七 (칠) 년인상) 피고로서만나섰고 그와함 께같은 교회관계자 金元弼 (김원필) (二八 (이팔) = 兵役法違反 (병역법위반) = 年齡六年引上 (연령육년인상)) 劉孝元 (류효원) (四二 (사이) = 兵籍申告不履行 (병적신고부리행)) 劉孝敏 (류효민) (三六 (삼륙) = 同上(동상)) 劉孝永 (류효영) (三五 (삼오) = 同上(동상)) 등제피고도 재단앞에나섰는데 공판은 개정벽두검찰측 기소장낭독에 이어 사실심리가 진행되었다이날文 (문) 피고는 연령인상사실은 이를시 인하였는데 소집해당자 (三二 (삼이) 세)이상 (三三 (삼삼) 세이상)되는자가 연령을인상한경우에도 그것이『병역법위반』이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도 두가지이론이있다 그런데 담 당姜(강)검사는기소장에서文 (문) 피고가『피를흘려 살생 (口生(생)) 을하지 않는다는 기독교진리에의해서연령을인상하고 병역을 기피하였다』고 지적하였다
日本語で :
統一教会事件 昨日初公判
▲ 법정에서 판사 앞에 선 피고인들. ‘X’ 표가 된 사람이 리더 문선명이다. 유효민 (劉孝敏) 이 중앙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유효원 (劉孝元), 유효영 (劉孝永), 김원필 (金元弼) 이다.
日本語で :
統一教会の教主文鮮明(ムン·ソンミョン)(本名 = 文龍明、36歳)は公判初日のため、ソウルの第4地方裁判所に現れた。午前10時半の審問は尹學老 ( ユン·ハクロノ ) 裁判官の下、姜瑞龍 ( カン·ソヨン ) 検察官が告訴した。(午後の審問は2時半に開始された。)当日の法廷は統一教会信徒とみられる女性で溢れていた。
文被告は複数の不倫容疑のため話題になっていたが、その日は兵役法違反の疑いのため被告として法廷に立った。これは被害者とされる女性からの告訴がなかったためである。彼とともに同じ教会に所属する被告も法廷に立った。彼らの容疑は次の通りである:金元弼(キム・ウォンピル)(28)(兵役法違反。年齢を6歳引き上げた疑い)、劉孝元(ユ・ヒョオン)(42)(兵籍申告不履行)、劉孝敏(ユ・ヒョミン)(36)(同上)、劉孝永(ユ・ヒョヨン)(35)(同上)。
開廷と同時に検察は告発内容を読み上げ、事実審理に進んだ。文被告は年齢の引き上げを認めた。法曹は年齢の引き上げが、徴兵の対象となる人物が32歳以上もしくは33歳の場合でも、兵役法違反になるかについて2つ論点を挙げた。対して姜検察官は告訴状にて、文被告が「キリスト教の教えに基づき、他人を傷つけ、殺めることを回避するため、年齢を引き上げ兵役を避けようとした」と指摘した。
▲ 裁判官の前に立つ文鮮明(写真右)と3人の統一教会指導者たち。
▲ 판사 앞에 서있는 문선명 (사진 오른쪽) 과 3명의 통일교 지도자들.
1955.9.21 서울新聞
兵役위반是認 統一敎會 事件公判
女信徒들法廷서祈禱
병역위반시인 통일교회 사건공판
여신도들 법정서 기도
1955.9.22 동아일보 東亞日報
文敎主에二年 統一敎會事件求刑
문교주에 이년 통일교회사건구형
작보 = 二 (이) 십일 개정된『통일교회사건』제一 (일) 회공판에서 사실심리에이어 관여 姜瑞龍 (강서용) 검사는피고들에게 각각다음과같이 체형구형을하였다
▲ 文鮮明 (문선명) (교주) = 懲役二年(징역이년)
▲ 劉孝元 (유효원) = 懲役二年(징역이년)
▲ 金元弼 (김원필) 劉孝敏 (유효민) 劉孝永 (유효영) = 各各懲役一年六月(각각징역일년륙월)
日本語で :
1955.9.22 東亞日報
文敎主に二年求刑 統一教会事件
20日(1955年9月)に始まった「統一教会事件」第一回公判での事実審理の後、姜瑞龍 (カン・ソヨン) 検察官はそれぞれ次のように刑罰の適用を求めた。
▲ 文鮮明(ムン・ソンミョン)(教主)= 懲役二年
▲ 劉孝元(ユ・ヒョオン)= 懲役二年
▲ 金元弼(キム・ウォンピル)劉孝敏(ユ・ヒョミン)劉孝永(ユ・ヒョヨン)= それぞれ懲役一年六月
1955.10.5 동아일보 東亞日報
文敎主에無罪 統一敎會事件言渡
문교주에 무죄 통일교회사건 언도
세칭『통일교회사건』에대한 서울지법판결공판은 작四 (사) 일상오열시五 (오) 십분 서울지법제四 (사) 호법정에서 개정 | 담당尹學老판 (윤학노) 판사로부터 文 (문) 교주에게는 『무죄』一 (일) 명은벌금형 나머지三 (삼) 명에게는체형이 각각언도되었다
◊弁判決言渡 (판결언도) (括弧内 (괄호내) 는求刑) (구형)) ▲ 文鮮明 (문선명) = 無罪 (무죄) (懲役二年) (징역이년)) ▲ 劉孝元 (유효원) = 罰金五千圜 (벌김오천원) (懲役二年 (징역이년)) ▲ 劉孝敏 (유효민) ▲ 劉孝永 (유효영) ▲ 金元弼 (김원필) = 各各懲役八月未決拘留六 (각각징역필월미결구류륙) 〇日通算 (일통산) (各各懲役一年六月) (각각징역일년륙월))
▲ 문선명은 1955년 10월 4일 오후 9시 40분에 해가 진 후 시간에 석방되었다. 유효원의 일기에 따르면, 그 당일에 있었던 짧은 공판에서, “윤학로 (尹學老) 수석판사는 문 선생님께서 무죄라고 공표했다.” 이러한 판결은 9월 20일에 재판정에서 문선명 본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했음에도 나온 판결이다. 오영춘 (呉永春) 의 증언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밝혀준다.
▲ 1950년대 문선명을 추종했던 네 명의 유씨 가족들 중 세 명과 함께 있는 문선명의 사진: 서 있는 사람이 유효원. 앞줄은: 유효민, 김원필, 유효영.
유효원은 통일교의 초대 협회장이었으나, 그의 삶의 막바지에는 통일교를 떠났다. 그는 삶의 마지막 9개월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가 죽기 바로 1주일 전 김덕진 (金徳振) 목사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유효원은 그에게 많은 것을 설명했으며, 또한 유효원의 사촌들 유효민과 유신희에게도 그리하여, 그 두 명 또한 통일교를 떠났다. 유효영은 수년이 지난 후에야 통일교를 떠났다.
김덕진 목사와 유효원의 병원에서의 만남은 여기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유효원은 1970년 7월 24일에 56세의 나이로 죽었다. 문선명은 유효원을 위해 대규모의 교회장을 치루어 주었으나,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 文鮮明と4人の教会指導者が、1955年後半または1956年初頭に刑務所から釈放された直後の写真。金元弼は最後に釈放された。
(後列)左から:文鮮明(문선명)、劉孝元(유효원)
(前列)左から:劉孝敏(유효민)、金元弼(김원필)、劉孝永(유효영)
유효민 (36쌍의 커플 중 한 명) 은 1993년 9월에 하기와라 료 (萩原遼) 와 인터뷰를 하였다: “’피가름’ 의식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죠. 인류의 조상인 이브가 에덴동산의 뱀과 성관계를 하였고 타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류의 타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타락으로부터 구원되기 위해, 성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의 ‘복귀원리’ 입니다. 교회에서 이 의식은 ‘성역사 (性役事)’ 라 불립니다. [이는 ‘의무적인 또는 필요한 성 의식’ 을 뜻한다.] 이것이 ‘피가름’ 의 정의입니다.”
“또한, 문선명 님이 무죄를 받음에 있어서, 이 여성분들과 그들의 남편들에게서 그 어떠한 항의나 불평이 없었기 때문에 문선명 님이 무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검찰은 문선명 님이 군역을 피하기 위해 나이를 속였다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온전히 여성분들과의 문제였습니다.”
누가 문선명을 위해 가짜 “무죄 증명서” 를 만들었을까?
이 증명서는 위쪽에 법원의 인장이나 주소 등이 없으며, 이는 서울상급법원의 문서라기에는 마땅하지 않다. 서식 자체가 그 세세한 내용이 굉장히 부족하다.
문선명은 이 증명서에 쓰여진 1955년 11월 21일이라는 판결일보다 6주 전인 1955년 10월 4일에 석방되었다. 두번째로, 그 날짜는 당시 여럿의 신문 기사들에 나온 날짜와 일치하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이 사건을 다룬 유명한 신문들 중 하나였다. 그런 신문들은 모두 문선명이 1955년 9월 21일에 선고를 받았다고 기사를 냈다.
그 날에 문선명은 기소되었으며 2년 형이 시작되었다. 다른 통일교 리더들도 같은 날에 기소되었다.
문선명이 재판정에서 강서용 (姜瑞龍) 검사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음에도 어떻게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을까? 문선명은 자신의 나이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다. 이는 재판에서의 논쟁점이 아니었다. 만약 문선명이 무죄였다면, 왜 문선명은 당시 많은 신문들이 보도한 것처럼 기소되었으며 구금되었을까.
이 “무죄” 증명서는 그 어느 판사나 공무원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1955년 7월에 문선명 기소 상 모든 죄목들을 나열하고 있지도 않다. 문선명은 “그의 새로운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려” 22세 연세대학교 여학생을 3일 동안 “불법 감금한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이 증명서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수많은 도장이 찍혀 나오는 대한민국 보통의 공식 정부 문서처럼 생기지 않았다. 이 증명서에 찍힌 하나의 도장은 너무나 흐릿해져, 참 운이 좋게도 그 누구도 쉽게 읽을 수가 없다.
이 증명서는 박보희 (朴普熙) 가 도널드 프레이저에게 미의회 조사에서 제시한 문서와 같은 문서이다. 박보희는 문선명이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역사상의 기록은 그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1974년으로부터 아주 명확했던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통일교는 문선명이 와세다대학교를 다녔다는 거짓말을 계속해 왔다.
聖所を歩く
~早稲田 · 高田馬場~
高田馬場教会
이 책은 일본 통일교가 2000년 10월 2일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은 문선명의 뒤로 와세대대학교의 본관 건물 중 하나를 보여준다. 책의 26쪽에는 아래에 보이는 문선명의 와세다대학교 가짜 졸업장을 담았다.
▲ 일본 통일교는 문선명을 위해 가짜 와세다대학교 졸업장을 만들기까지 했다!
문선명의 이름은 일본식으로 류메이 에모토 (江本龍明) 라 적혀있다. 그의 이름 아래에는 그의 생일 1920년 1월 6일 (다이쇼 18년) 이 적혀있다. 문선명의 졸업일은 1943년 9월 30일 (쇼와 18년) 로 되어있다. 이는 와세다대학교 졸업일로 보이나, 9월 18일로 알려진 문선명의 실제 기술고등학교 졸업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가짜 졸업장은 1977년 10월 18일 (쇼와 52년) 에 만들어졌다.
서명이 전혀 없다. 졸업장의 마지막에 있는 이름은 무라이 스케나카 (村井 資長) 이다. 그는 와세대대학교의 총장이었으나, 통일교와 CARP (원리연구회) 를 격렬히 배척했다.
무라이 씨는 통일교에 대해 일본의 한 잡지와 인터뷰를 하였다.
와세다 전총장이 통일교회의 집단결혼을 철저하게 비판하다
이 졸업장은 “통일교의 역사와 문선명의 삶 1920-1990” 에 대한 CARP (원리연구회) 문서 뿐 아니라 위에 보여진 책에도 포함되어 있다.
유효민 – 통일교회의 경제적 기반에 공헌하고 배신 당했다
일본인 멤버 K 씨는 자신이 싫어하는 한국인 남자와 강제로 결혼했다.
일본인 멤버 U 씨는 그녀를 폭력을 휘두르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했다.
野錄 統一敎會史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사)
박정화 외2인 지음 (前 통일교창립위원)
통일교의 실상과 그 허상
– 종합적 자료편 –
탁명환 문학석사 (저자)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정체를 폭로한다)
저자 박준철
生의 原理 생의 원리
정득은 丁得恩
통일교 초월 (1편) : 나는 통일교를 이렇게 초월했다!
통일교 초월 (4편) : 문선명의 6마리아 혈통복귀설은 사실이었다!
통일교 초월 (5편) : 문선명의 <원리원본>을 꼭 읽어라!
통일교 초월 (6편) : 통일교 원리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라!
통일교 초월 (7편) : 아프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English
Ewha Womans University scandal reported in 1955 newspapers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 통일교
1996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2020년 하늘부모님 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