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희 – 6마리아의 한 사람 이었다.

유신희 – 6마리아의 한 사람 이었다.


▲ 유신희

1954년부터 수년간 6마리아의 한사람. 문선명의 원리를 믿고 복귀를 받아, 5-6인의 남
성과도 복귀의 실천을 했다.

지금 회고하면 「참으로 어리석었다. 」고 후회하며,「문선명은 죽어 마땅한 남자다」라고 단언한다.

– 유신희씨는 부산 영도에서 남편인 신성묵씨와 다섯 아이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때 근처에 살고 있던 사촌오빠 유효원의 권유로 문선명의 포교집회에 방을 빌려 주셨던 것이지요.
유: 그렇습니다. 1953년 12월 24일이었읍니다. 처음에도 3일간만 쓰겠다는 약속 이었읍니다만 결국 25일간이나 되고 말았읍니다. 그때 사촌오빠인 유효원, 효영형제, 그리고 유효민등 머리가 좋은 오빠들이 믿게 되므로 우리들 부부도 덩달아 믿게 됐어요.

유: 메시아의 위대한 사람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세히는 이해하지 못하였었지만, 오빠들이 전부 믿어 우리부부도 덩달아 믿었던 것입니다.


▲ 문선명, 유신희 (맨 오른쪽에)

– 그래서 얼마후에 부부가 서울로 가셨군요? 아이들은 어떻게 하셧읍니까?
유: 남편이 먼저 집을 나갔으므로 내가 가족회의 처럼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하였읍니다. 「아빠도 엄마도 재림주가 오셔서 대단히 바쁘게 되었다. 그래서 너회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없게 되었구나‥‥」
위 아이는 중학교 2학년생이었고 제일 끝의 막내딸은 아직 여섯살 이었읍니다만, 다섯 아이들이 이해해 주어서 서로 손잡고 고아원으로 보냈읍니다. 
정 말로 해서는 않될 짓을 했읍니다. 
그로부터 7년동안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 벌써 40년이나 지났읍니 다만 지금 아이들은?
유: 모두 기독교신자로서 그저 얌전하게 잘 지내고 있읍니다. 그래도 막내딸하고는 자주 충돌이 있읍니다. 어머니 때문에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대단히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나를 책망 한답니다.

– 문선명과 복귀의 섹스를 한 여성으로서 이렇게 얼굴을 내놓고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은 아마도 유신회씨가 처음이 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지금의 심정은?
유: 지금까지 침묵해 온것은 아이들에게 북귀의 사실이 알려지는것이 부끄럽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벌써 나이가 나인만큼 참을 수 있읍니다만은 자식들이나 손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사실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만은 나같이 미혹
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기에 죽기보다 어려운 이 사실을 밝혀야 겠다는 결심을 한 바입니다.

– 문선명과의 복귀에 관해서 자세히 이야기 해 주십시요?
유: 여자 식구 한사람한테 꾀임에 빠져서 밤늦게 캄캄한 문선명의 방으로 갔읍니다. 
거 기서 복귀를 받은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극히 짧은 시간에 깜딱 할 사이에 끝났읍니다. 사단의 피를 밝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 두번 더 복귀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읍니다만은 나는 한번 만으로 끝냈읍니다.

– 그것은 왜?
유: 문선명은 여러 여자와의 관계가 많아서 다음에는 언제 내 차례가 돌아 올런지도 몰랐고 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피난민 시절에 그것은 다름 아닌 범냇골 (지금은 성지로 명명, 통일교 교인들이 세계 각처에서 참배 하러옴) 당시 나는 근처에 살고 있는 터이여서, 우리 아버님과 문선생은 매일 등산 산책을 하는 처지여서 어느날과 같이 나도 손을 잡고 아침 등산 하던중 문선명이 철부지 나를 움막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을 해 많은 출혈이 심했었다고 울면서 이야기 하여‥‥ 아무리 복귀라 하는 명분 이라지만 타락이니 복귀니 전혀 귀가 열리지 않은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가 있읍니까?
그래서 나는 두번 복귀를 단념 했읍니다.

– 문션명 한테서 복귀를 받은다음 유씨는 몇사람의 남성과 복귀를 하였지요.
유: 그때는 문선명 한테서 복귀를 받은 여성은 다른 남성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가르쳐서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6인의 남성과 복귀 했읍니다

– 그래서 유씨는 6마리아의 한사람이었다고 박정화씨가 썼던데요.
유: 6마리아의 이야기는 듣기는 하였읍니다만 누가 그런지는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처지 인지 나는 잘 몰랐읍니다. 나 보다 훌릉한 여인들이 많이 있었고 문선명의 주위에는 항상 세사람 정도가 바짝 붙어 있어서 나와는 격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으니 까.


▲ 신정순*, 강옥실*, 이순철*, 임영신*

– 그 세사람 이 란 누구인가요?
유: 신정순*, 양윤신*, 이순철* 씨 들입니다.
문선명이 유난히도 귀여워했고 후에 재산을 노리고 재벌과 결혼시킨 임영신이 들어 온 것은 그 뒤의 일 입니다.


▲ 문선명을 애워싼 마리아 (인처) 들 왼쪽 두번째부터 강옥실*, 임영신*, 문선명, 옥상현*, 신정순*, 이순철*


– 문선명은 차례 차례로 새 여성을 신변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였다고 하는데 같은 여성들 끼리 특탁거리는 일은 없었읍니까?
유: 있었지요. 여자들 끼리니까 질투나 독점욕은 당연히 있읍니다. 그래서 여자들 끼리 심한 싸움이 있을때에는 문선명이 그러한 여자를 때 린 일도 있었읍니다. 
그리고 육체도 재산도 빼앗고 볼일이 끝난 여인은 계속 주변에서 내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내 쫓긴 중의 한사람 입니다.

– 6마리아는 그때 그때의 정원으로 적당이 교체가 되어 결국은 재산이나 새로운 여 인이 목표 이었던가요. 신구교체는 문선명의 독단으로 행해 졌읍니까?
유: 우리들은 옆의 일도 몰랐었읍니다. 그래서 어느땐 그 주위에서 쫓겨난 여자만도 다섯사람이나 되어서 서로 이야기 한일도 있읍니다. 그 정보교환으로 알았읍니다만 실로 여러 여자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것입니다.
 처녀를 임신시켜서 아이를 낳게 하기도 하고 유부녀나 어머니와 딸들의 정조를 닥치는 대로 짓밟아서 가족이 풍지박산이 되기도 하고 유복했던 사람이 재산을 빼았겨서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고

– 여러가지 비극이 셀수 없을 정도로 속출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모두가 참말로 분개 하였었읍니다.
유: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이 모여 있을 어느땐가 원리의 설명을 내 사촌오빠인 유효원이 열심히 땀을 흘려가면서 열심히 강의하고 있는데 문선명은 여성들과 히히덕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신자들에게는 유효원쪽이 존경을 받았고 인기가 있었읍니다. 
그 유효원 오빠는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좀더 오래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학부 출신답게 자기 병을 잘 알고 있어서 수술을 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싫어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문선명은 병 따위는 진짜 메시아라면 고칠수 있을게다고 말 할것을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러 한 소리도 있었읍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유효원씨에게 무리하게 수술을 시켜서 죽게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높은 효원씨에게 정상의 자리를 빼앗길 일도 없게 되어 문선명은 모름지기 안심 하였을 것입니다.

– 지금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 보고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유: 이제 생각 하는것은 「한(恨)」그것인데 정말로 후회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할말이 없읍니다 나도 정말 바보 였읍니다. 좀더 현명 하였더라면 그때에 선악의 구별이 섰을 터인데 어리석었기 때문에 이렇게 돼 버리고 만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남편과도 이흔하고 아이들과도 떨어져서 혼자서 조용히 살고 있읍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무렵 문선명의 신변에서 봉사하게 한 여성으로서 행복하게 된 사람은 한사람도 없읍니다. 
모두 문선명의 사기에 속아서 몸도 마음도, 재산도 바치고 걸레가 되어 당장 내일 생활에도 곤난을 겪고있는 사람들 뿐입니다.
 그러한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할때 우리들의 소원은 단 한가지.문선명은 재림 메시아가 아니다.

죽어 맞당한 사나이, 하루라도 랄리 죽었으면 하는 인간이다 라고 하는것 뿐입 니다.

비디오


野錄 統一敎會史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희사)

박정화 외2인 지옴 (前 통일교창립위원)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3aXq&articleno=15851262


홍난숙

문선명의 장남인 문효진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홍난숙. 그녀는 1995년 8월 8일 14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스트가든을 떠났다. 그녀는 참가정을 떠난 것을 ‘탈출’ 이라고 표현한다. 그 후 홍난숙은 문선명 일가의 실상을 폭로하는 책을 썼다. 그 책의 이름은 <In the Shadow of the Moons> 이다.


박사무엘 비디오의 대본

박사무엘: 제가 받은 피드백에 답하여 2015

유호민 – 통일교회의 경제적 기반에 공헌하고 배신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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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 통일교 – 사교여부 는『노 | 탓취』


문선명의 정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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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 (문선명 통일교 집단의 정체를 폭로한다)

저자  박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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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理原本 1952년

丁得恩 / 鄭得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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