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의 정체! (1)

문선명의 정체! (1)

김명희 저

한 때 열렬한 통일교도였고 문선며으이 비밀 지령을 수행하여 오던 김명희가 밝히는 문선명의 가공할 실체!
그는 세계황제를 꿈꾸는 미치광이다. 히틀러, 김일성을 능가하는 흉계로 세계 곳곳에 암세포처럼 번져가는 문선명의 세력을 보라! 그는 곧 그가 가진 전역량을 동원하여 이 나라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총 공세를 펼칠 것이다.

선교신학연구회


종교적 과대망상가
문선명의 말

• 공자, 석가, 예수도 내 부하다. (1975. 3. 15)

• 앞으로 내 말이 법률로 통용될 때가 올 것이다. (1971. 11. 26)

• 세계를 하나의 통치자 앞에 굴복시켜 놓아야 한다. (1976. 3. 2.)

• 필요한 재력만 있으면 기성교회는 무너뜨릴 수 있다. (1969. 12. 3)

• 통일교회는 발전해 가지고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1976. 2. 22)

• 앞으로 통일교를 믿든가, 도망가든가, 죽든가 셋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내가 만들고 있다. (1972. 6. 25)

• 이러한 안팎의 모든 활동은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럴줄 몰랐다” 할 날이 올 것이다. (1972. 9. 26)

•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내게 속해 있다. (1972. 9. 25)

• 내가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 최고기록을 만들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1977. 5. 3)


저자 김명희에 대해
이 책을 쓴 김명희는 1963년 1월 26일부터 1978년 3월까지 15여년간 문선명에게 헌신했던 사람으로서 한때는 수택리땅사건, 일화제약의 탈세사건 같은 문선명의 비밀 특명사항을 전권 위임받아 처리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문선명의 비밀 사건들을 수습,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문선명과 그 교단의 비리와 부정, 그리고 사기성과 엄청난 흉계를 알게 되었고 교단과 사회의 장래를 위해 이를 시정해 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안팎으로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1977년 8월 12일 통일교회 핵심간부 37명을 모아 놓고 시정책을 제시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통고한 기일 내에 반성과 시정의 징후가 보이지 않자 결별을 선언하고 나와 사회 각계에 문선명의 사기성과 위험성을 폭로하고 알리는데 주력해 왔다.
저자의 이러한 반 문선명활동이 거세어지자 다급해진 문선명교단은 과거 저자가 사재 (私財) 를 아까와 하지 않고 교단문제를 앞장서 해결해 나갈 때 들인 개인 사비를 충당 해주기 위해 교단측에서 저자에게 수교해준 금액을 트집잡고 거꾸로 뒤집어 씌워 공갈협박범으로 형을 살게 하였으며 10억을 줄 테니 반 문선명운동을 중지해 달라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시켜주겠다는 등의 회유책을 펼쳤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출감 후 7여년간 문선명에 관한 자료를 면밀히 수집 집필하여 이 책을 내게 되었다.


문선명의 흉계
문선명, 그는 “세계황제” 가 될 계획 아래 통일교를 설립하고 하나님, 역사, 세계평화, 반공, 통일 등 거절키 어려운 명분으로 사람들과 재물을 끌어 모은 후, 이를 터전으로 국제 승공연합, 평화교수협의회, 전국대학생원리연구회, 남북통일전국학생총, 남북통일국민사상운동 대학생자원봉사대 등 단체와 전 세계각국에 150여개에 이르는 기업체 각종 기관, 신문사 등을 거느리고 결정적 시기에 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한국, 일본, 미국의 정치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전 세계를 지배할 흉계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내 말이 법률이 되어 움직일 때가 온다” 고 큰 소리 치는가 하면 명절날 레이건대통령, 일본천황, OO 대통령 등 각국의 우두머리와 공자, 예수, 석가, 마호메트 등 역사상의 성현을 총 망라한 인물들의 대역을 간부들에게 맡겨 놓고 무릎을 꿇려 절을 받는 의식을 행하는 등 처음부터 “세계정복과 지배” 가 문선명의 목적임이 여러 자료에서 드러난다. 무술인 수 천명을 포섭하여 대기시켜 놓고 “통일교를 믿든가 도망가든가 죽든가 셋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를 내가 만들고 있다” 통일교를 반대하다가 대낮에 나가 넘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라고 호언하는 그의 잔인한 흉계를 제때에 저지하지 못할 때 전 세계는 다시 한번 히틀러 치하와 같은 암흑기를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차례
머리말 저 큰 도둑을 잡아라  …………………………………………… 3
1. 문선명의 정체  ……………………………………………………… 17
2. 문선명의 목표  ……………………………………………………… 32
깃발  …………………………………………………………………… 35
나의 맹세  ……………………………………………………………… 36
경배 /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38
행사일  …………………………………………………………………… 39
행사일표 (자료 1) ………………………………………………………… 40
사탄굴복 및 경배의식 / 경례식의 기괴한 의식 …………………………… 43
3. 문선명의 세력 / 단체기관과 기업체 / 종교단체 ………………………… 45
사회단체 ………………………………………………………………… 46
문화사업단체 …………………………………………………………… 47
교육기관 ………………………………………………………………… 48
예술단체 ………………………………………………………………… 49
언론기관 ………………………………………………………………… 50
출판사 / 인쇄소 ………………………………………………………… 52
기업체 …………………………………………………………………… 53
부동산 / 건물 …………………………………………………………… 56
통일교 …………………………………………………………………… 58
통일교 협회 정기수련회 (자료 2) ………………………………………… 66
통일교 협회 각종교육약사 (자료 3) ……………………………………… 69
순회전도단 활동표 (자료 4) ……………………………………………… 77
문선명 미국 70개 도시 강연일정표 (자료 5) ……………………………… 79
통일교가 침투한 나라들 (자료 6) ………………………………………… 82
세계 성지일람표 (자료 7) ………………………………………………… 84
국제승공연합 …………………………………………………………… 88
국제승공연합 교육 및 각종 집회 약사 (자료 8) …………………………… 89
초청인사 총괄내역 (자료 9) ……………………………………………… 95
승공연합회 전국조직 말썽 ……………………………………………… 97
초교파 기독교 협의회 …………………………………………………… 99
문선명의 말 ……………………………………………………………… 102
초교파운동 연혁 ………………………………………………………… 103
기성교회 장로, 집사들 제주도 여행 ……………………………………… 107
12억원에 농어촌교회 1천개 매입계획 …………………………………… 108
문교주 초청 만찬회 / 기성교회 평신도 초청만찬회 ………………………… 109
나는 부끄러운 목사입니다 ………………………………………………… 110
통일교 수법에 치가 떨립니다 .…………………………………………… 116
세계평화교수협의회 ……………………………………………………… 120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활동 ………………………………………………… 123
세계평화협의회 관련교수 명단 (자료 10) …………………………………… 125
교수 99명 통일교활동 지지성명서 (자료 11) ………………………………… 140
문선명 선생에 대해 – 사랑과 눈물이 많으신 분 – …………………………… 144
김일성에 대해 – 위대하신 분 – ……………………………………………… 144
야마모도원수의 국장일 / 우리들은 대일본국민이다 …………………………… 145
국제 크리스챤교수협의회 …………………………………………………… 147
국제크리스챤교수협의회 창설 ………………………………………………… 148
교수초청 세미나 149 / 교수원리 세미나 연혁 (자료 12) ……………………… 151
통일신학교와 New ERA에 의해 개최된 회의 (자료 13) ……………………… 153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아카데미 수상자 개요 (자료 14) ………………………… 162
통일사상연구원 교육약사 (자료 15) …………………………………………… 163
전국 대학생 원리연구회 ……………………………………………………… 167
전국대학생 원리연구회 주요 하계 수련대회 연혁 (자료 16) …………………… 169
전국대학 원리연구회 21일 수련회 연혁 (자료 17) …………………………… 170
원리연구회 각 학군회관 및 학사전화번호 (자료 18) …………………………… 171
승공세미나 대학생 국제캠프 (자료 19) ………………………………………… 172
국제기독학생 연합회 ………………………………………………………… 173
기성교회 기독학생의 유혹의 손길 – ………………………………………… 173
일본대학가의 원리연구회 활동 ……………………………………………… 175
대학에 침투하는 원리연구회 ………………………………………………… 175
리틀엔젤스 …………………………………………………………………… 193
리틀엔젤스 해외공연 연혁 (자료 10) ………………………………………… 195
재미동포 원리공청회 / 재미동포 원리공청회 (자료 21) ……………………… 196
재미동포 모국방문 지원시비 ………………………………………………… 198
통일교 교포지도자 초청세미나의 진상을 밝힌다 ……………………………… 199
4. 화보: 사진으로 보는 문선명의 정체 ………………………………………… 212
5. 문선명 어록 (위장단체 관계) ……………………………………………… 235
6. 문선명, — 1986년 ……………………………………………………… 242
특별보고, 문선명의 활동 …………………………………………………… 243
7. 정치야욕 ………………………………………………………………… 259
통일교는 종교를 가장한 정치잡단 …………………………………………… 260
8. 문선명 어룩 (정치야욕) …………………………………………………… 262
9. 문선명의 결의 …………………………………………………………… 263
10. 일본 통일교의 비리 (원제: 이것이 통일교의 秘部다) …………………… 269
폭력을 휘둘러 점거 ………………………………………………………… 269
경례식의 기괴한 의식 ……………………………………………………… 275
돈 거두기에 광분 …………………………………………………………… 277
해피월드 회사란? …………………………………………………………… 279
탈세의 수법 ………………………………………………………………… 280
판매원의 안내서 …………………………………………………………… 282
일본에서 파는 통일교 상품의 원가 이익표 (자료 22) ………………………… 285
미국에 있어서의 탈세재판 …………………………………………………… 285
11. 진정서 ………………………………………………………………… 289
25년동안 속았습니다 ……………………………………………………… 289
12. 문선명의 활동에 대한 반응 …………………………………………… 296
기독교 범교단 지도자협의회 성명서 ………………………………………… 296
미국의 회 보고서의 결론 …………………………………………………… 299
로마교황청의 지시문 ……………………………………………………… 302
13. 문선명은 누구인가? …………………………………………………… 306
문선명교주의 발자취 ……………………………………………………… 308
1. 문교주의 행적 …………………………………………………………… 308
1) 문교주의 가정배경 ……………………………………………………… 308
2) 문교주의 학력 및 경력 …………………………………………………… 309
3) 문교주의 종교적 배경 …………………………………………………… 310
4) 문교주와 이북의 신령파운동 …………………………………………… 312
5) 문교주의 투옥생활 ……………………………………………………… 314
6) 문교주와 통일교의 태동 ………………………………………………… 316
2. 통일교의 창설경위와 그 발전 …………………………………………… 318
1) 통일교의 출발 …………………………………………………………… 318
2) 세칭 이화여대 사건의 전말 ……………………………………………… 320
3) 통일교의 국내활동 (1955~1979) ………………………………………… 322
4) 통일교회의 해외활동 (1959~1979) ……………………………………… 326
문선명, 그는 과연 누구인가? ………………………………………………… 331
고집 센 용명이 ……………………………………………………………… 331
와세다대학에 학적 없어 ……………………………………………………… 333
눈이 나빠 중학시험에 떨어지다 ……………………………………………… 333
잘 꾸며대는 문선명 ………………………………………………………… 334
엘리자베스여왕이 예물을 갖고 온 것이다 …………………………………… 335
1년도 못간 김영운의 결혼 …………………………………………………… 336
사기 당한 문선명 …………………………………………………………… 336
문선명의 배후에는 점쟁이와 잡도인들이 …………………………………… 338
문교주, 조강지처 벌어다 …………………………………………………… 341
우리 아버지는 가짜 재림주다 ……………………………………………… 343
흥남감옥에서 얽힌 비화 …………………………………………………… 343
문선명의 죄목은 “여성관계, 사회교간죄” …………………………………… 346
천신만고의 남하작전 ………………………………………………………… 347
여관에서 또 어린양 혼인잔치 ………………………………………………… 349
문의 아이를 밴 김명희, 일본으로 밀항 ………………………………………… 350
북한에서의 문선명과 그 활동 ………………………………………………… 350
문의 두려움은 여인들과의 불륜관계 …………………………………………… 351
혈통복귀원리의 이론형성과정 ………………………………………………… 352
문의 교리는 황국주, 김백문, 정득은의 이론 …………………………………… 353
“워리강론” 속의 혈통복귀 주장 ………………………………………………… 354
접신녀 정득은의 “생의 원리” 전문 ……………………………………………… 355
정득은, 박태선, 문선명의 관계 ………………………………………………… 363
정득은의 딸, 우리 모친은 인간이하…   ………………………………………… 366
박태선은 문선명과 선후배지간 ………………………………………………… 367
문선명의 찬란한 혼음행각 ……………………………………………………… 367
차라리 주사기로 피를 뽑아 섞는 것이 …  ……………………………………… 368
야, 이종교사기꾼놈아! ………………………………………………………… 370
축복가정 선서 ………………………………………………………………… 376
일선통혼 (日鮮通婚) 찬양하는 문선명 ………………………………………… 387
비밀폭로 두려 원하는 문선명 ………………………………………………… 377
통일교 간부들의 불륜행위 …………………………………………………… 378
문교주의 사관과 그의 정체 …………………………………………………… 381
모든 것을 비치시오 …………………………………………………………… 386
신도들의 고생 ………………………………………………………………… 387
장영자, 이철회도 포섭 ………………………………………………………… 388
탈퇴를 선언했던 박보희 ……………………………………………………… 389
이용하고 버리는 문선명 ……………………………………………………… 391
초대협회장 유효원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 ………………………………… 391
용기 있는 고발을 기도하며 …………………………………………………… 394
14. 문선명의 여자관계 ………………………………………………………… 395
15. 문선명의 위험성 …………………………………………………………… 404


336
1 년도 못간 김영운의 결혼

문교주의 원리에 의하면 통일교신도가 아닌 사회 사람들을 완전히 사탄으로 몰아치고 있으면서도 미국에 선교사로 가 있는 김영운 선교사는 세상 사람과 축복을 해주었으나 얼마 못 되어 헤어지게 되었다. 사실 김영운여사 야말로 통일교 미국선교의 개척진 중 인격적으로 훌륭한 학자로서 초창기부터 고생을 했고 그녀는 바른 말 잘 하기로 유명하여 문교주의 두통거리였다. 다른 신도들이 문교주에 맹신하는 데 비해서 김영운여사는 따지는 편이고 성서적인 지식이나 신학에 어두운 문교주에게는 위험인물 이였기에 그녀를 세상 사람과 결혼하도록 하여 자연도태를 시켰는지 모를 일이 다.

그들의 교리로 볼 때 불신의 세상 사람과의 결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하는 문교주의 속셈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통일교 본부 청파동교회에서 행한 감영운여사의 결혼식전에서 소위 영통한다는 통일교 교주 측근의 할머니들은 계시를 받아 보니 그 결혼식이 하늘이 기뻐하며 축복하는 행사라고 하면서 기뻐하며 축복해 주었는데 1년도 채 못 넘기고 헤어지고 말았으니?……

사기 당한 문선명
1956년경으로 기억된다.

당시 배재학교 교목이었던 김 모 목사는 통일교의 이론을 연구하기 위해 약한 달간 청파동 통일교본부에서 침식을 하면서 문교주로부터 원리강론을 듣고 교주의 생활을 연구하였다. 그가 한 달 만에 결론을 내리고 돌아선 것은 문교주가 적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1957년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18세 가량의 정신이상자인 소년 하나를 김재건 노파와 홍순애 (현재 문 선명의 부인인 한 학자의 모친)여인이 자기네들의 신통력으로 정신이상증세를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지나치게 안수. 안찰을 하다 결국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두 여인은 강원도 춘천형무소에서 2년간에걸쳐 복역을 하고 나왔다.

통일교는 초기에 이적이나 신유의 역사가 많은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사실은 모두 위장된 거짓일 뿐이다.

성서에는 악령이 들린 미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알아 보았으나 통일교본부에서 유숙하면서 발악하는 정신이 상자들을 상대로 야단을 치면 소위재림주라는 문교주를 상대로 욕을 하고 대어드는 일도 있었으나 악령의 눈으로 볼 때, 재림주는 커녕 가소로운 가짜 재림주임이 틀림없다고 판단되고 있는지 추측된다.

적어도 문교주가 재림주라면 그의 원리인 부활론에서 말하고 있듯이「영인들의 재림으로 본 종교통일」에서와 같이 귀신들린 청년을 문교주의 말 한 마디로 내쫓아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1957년도에 있은 일이다. 36가정의 양 모 씨의 부친 姜 大成씨가 통일교에 접근하여 문교주와 중진간부들에게 말하기를 <만리동에 적산가옥의 빈 집이 큰 게 하나 있는 데 집회장소로 사용하면 좋을 것이라> 고 하면서 <재판중에 있는 이 집을 찾아가서 통일 교에 기증하겠다고 하여, 잔뜩 욕심이 생긴 문교주와 간부들은 만리동 집을 구경했다.>

강 씨는 100만환만 있으면 이 집을 찾을 수 있다는 밀에 속아 문교주는 급히 100만판을 마련하여 강 씨에게 넘겼던 바,돈을 받은 강 씨는 그 길로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이러한 사실은 재림주를 자처하는 문교주의 물질적 인심과 사람 하나도 볼 줄 모르는 문교주의 안목을 그대로 들어 내고 있으니 사기꾼도 문제지만 속는 사람도 문제가 있는 법이라 통일교에서는 이런 사실을 창피스러워<쉬쉬> 하며 덮어 두고 있다.

1960년 초반의 일이다. 아주 그럴싸하게 잘 생긴 50대의 부인이 자칭 엉통인이라고 하면서 문교주를 찾아 와 접근했다.

그 여인의 이름은 李東錫 었고 그녀는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이 자기의 자기 집 장농 밑에는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준비한 금과 보물이 가득들어있다고 늘어 놓았다.

장농 속에 있다는 귀금속 보물이 탐난 문교주는 군침을 삼켰다. 그리하여 문교주와 그 여인은 서로 가깝게 지냈고 교주는 그녀를 깍듯이 모셨고 자기전용찦차에 태워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교주는 자기의 제자인 김인철과 이 여인간에 수양아들과 어머니 인연을 맺어 김 씨로 하여금 장농 속에 있는 수 십억대의 보물을 확인케 할 계략을 썼다. 하루는 이 여인이 급히 쓸 일이 있다고 하여 교주로부터 40만환을 받아서 그 길로 행적을 감춰버려 문교주는 닭 좇던 개 담장을 바라보는 격이 되었으니이 역시 한치 앞도 내다 못보는 가짜 재림주의 실패극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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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주가 과욕으로 빚은 또 하나의 사기 망신극이 있다. 1955년대에 일어난 오창환 사건이었다. 이화여대 사건 당시 문교주는 본부 간부들과 같이 서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때 유효원 협회장과 같은 감방에 복역하고 있던 오창환이라고 하는 37세의 죄수가 얼마 후 형기를 마치고 먼저 나온 유효원씨를 찾아 통일교본부에 나타났다.

유효원이 오 씨를 문교주에게 인사시켰더니 며칠 후에 오 씨는 유효원과 문교주에게 이런 달콤한 말을 던졌다.

「인천에 목재가 많이 있는 데 80만환만 있으면 몇 배 장사를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문교주는 김 모 부인에게 급히 자금준비를 지시하여 급전을 마련해 가지고 그 다음날 협회간부였던 유 모씨가 돈 가방을 가지고 오 씨와 함께 인천으로 떠났다.

인천행 버스 속에서 오씨는 돈 가방을 들고 도망쳐 버렸다. 결국 오 씨의 사기극에 분격한 문교주는 신도 여러명을 동원하여 오 씨의 행방을 추적하였다.

오씨가 인천과 노량진 미군부대에 있었다는 말을 근거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감영운여인이 미군부대마다 돌아 다니면서 오씨를 찾았으나 허 탕을 쳤고 조 동석씨가 우연히 오씨를 붙잡아 주었는데 문교주는 그를 다시 형무소에 보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볼 때, 문교주가 참 재림주라면 사기꾼 하나쯤은 식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죄인과 원수를 위해 목숨을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였으나 현대판 자칭 재림주 문 용명은 오히려 잘못을 사과를 하는 오 씨를 안면을 바꾸고 냉정하게 형무소로 보내 버렸으니 인류의 참 부모라는 문교주의 도량이 어떤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문선명의 배부에는 점쟁이와 잡도인들이···
1950년대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된 용산구 원효로에 살고 있는 윤청정심보살(1981년에 살해 당한 윤 보살)과 문교주와 얽힌 이야기는 통일교가 어떤 집단인가를 정확하게 보여 준다.

윤 보살은 원래 용산역전에서 사주를 봐 주고 점을 쳐 주는 자칭 영통인 인데 통일교와는 1950년대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통일교인들의 사주 · 관상을 많이 봐 주었고 문교주를 재림주라고 증거 하였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영통한 잡도인이 문교주를 재림주로 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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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한다고 하여 통일교를 중심한 종교통일을 그들의 교리인 부활론에서 예를 들어 윤 보살을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윤 보살이 1981년도에 원효로에서 살해당하므로 그들의 선전꺼리가 사라져 버렸고 주간종교 신문에서는 윤 보살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까지 실은 넌센스를 보였다.

문교주와 흥남형무소 옥중동기생인 김 덕진 (현재 목사) 씨가 부산에 내려 가는 데 기차 속에서 윤 보살이 김 씨를 보더니 “선생님 신수가 훤 하시어 앞으로 큰일을 하겠수다” 라면서 말을 걸어 왔다.

그러다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문 선명 이야기도 나오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송 상로와 더불어 통일교 중진들과 만나 사귀게 되었다.

윤보살과 송 장로의 미리 짜여진 각본에 의해 문교주를 재림주로 증거케 되었다.

문 선명 자신을 재림주로 증거케 해 준 윤 보살을 문교주는 최대한 이용했고 윤 보살은 윤 보살대로 통일교인들의 사주를 봐 주어 초창기 신도들은 유 보살에게서 사주를 안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어 재미를 보았으니 문교주와 윤보살의 수수관계는 계속되었다.

본래 바람기까지 있는 윤 보살은 김 모씨와 자기가 같은 관계를 맺었다고 실토하고 있었음을 보아 그외 통일교 간부들과의 관계도 석연치 않다.

문교주는 가짜이건 진짜이건 간에 자신을 재림주라고 증거하면 흥미를 갖고 좋아하며 선전꺼리로 이용한다.

문교주는 사주 · 관상쟁이를 좋아했다. 1960년대 초반에 문교주는 종로구 인사동에서 직업적인 사주풀이를 하고 있던 이 명학이라는 이 노인과 친했다.

이 씨는 통일교의 축복가정 (문교주 주례로 결혼을 한 가정) 들의 사주를 봐주었고 그 사주풀이에 따라 문교주는 36가정 · 72가정의 찍을 맞추어 주었고 이때 사주보따리를 들고 심부름을 한 사람은 송 장로였다.

남녀 의 결함을 사주쟁이의 판단에 따라 결성하는 재 림주연 (再臨主演) 하는 문,교주는 사주쟁이 이씨가 좋다고 하면 짝을 맞추어 주었고 나쁘다고 하면 짝을 안맞추어 주는 등 결국은 신도들의 짝은 중심까지 들여다 본다는 문교주가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사주쟁이에 의해 맞춰지는 것을 맹신도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모시고 뜻을 편다는 통일교의 문교주의 이와 같은 미신적인 처사는 이해가 안되며 통일교에서는 이를 두고 문교주의 결정을 외부의 사탄까지 증거한다고 거꾸로 선전하고 있으니 거짓의 명수들인 것이다.

유명한 사주쟁이와 재림주가 결정하여 결합시킨 축복가정들이 탈퇴하고 이혼까지 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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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발생한 사주쟁이 이 재덕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재덕은 송 장로를 통해 통일교화 인연을 맺고나서 통일교의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이다.

한 때 문교주가 그의 뜻을 펴기에 암담한 시기가 있었으니 그때 최원복여인은 소위 도인 (道人) 이라고 하는 사주쟁이 이 씨를 찾았고 통일교 부녀신도들은 상도동에 있는 이 씨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 씨는 문교주 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기 자신은 문의 아버지 격이라고 했다.

최 여인이 이 씨를 찾아가자 이 씨는 당장에 하는 말이「당신은 인류의 어머니」라고 하는 바람에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통일교 가성하려면 자기의 핏줄을 받아 재생해야 한다” 고 하면서 “문교주의 사명이 하늘에서는 끝났다” 고 털어 놓았다고 한 이탈자는 전한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통일교인들이 문 선명이 재림주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소위 잡도인이라는 영통인들까지 찾아 동분서주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문 선명을 재림주로 만들기 위한 억지 편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973년도에 문교주는 경기도 청평별장에서 36가정과 1970년도에 시작된 3년 노정이 끝난 전도대원들을 모아 놓고 조상풀이 (解怨) 굿을 했다.

그때에 막걸리 · 돼지대가리 · 떡 등의 제삿상을 차려 놓고 논산 할머니 이 백임의 주도아래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서 무당식 절을 하고 굿을 했다.

당시 이 백임 노파는 67세로서 원래는 대종교 교인이었는 데 73년 문 선명과 줄이 닿아 통일교에서 영통인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며 통일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언제나 제주노슬을 하다가 1979년 9월 암으로 사망했다.

문교주는 젯상을 차려 놓고 양편에 라헬과 레아로 지칭되는 여인을 거느리고 큰 절을 하면서 이것은 영계를 해방시키는 의식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통일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영통인 (?) 논산할머니는 통일교 산하 각 기업체까지 순회까지 하여 통일교인들은 다 이러한 의식에 참가한 것이다.

이러한 해원굿은 한국의 무속적인 굿거리와 꼭 같은 것으로서 소위 기독교 간판을 걸고 있는 통일교가 이러한 비밀의식을 갖는 접으로 보아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닌 유사 기독교임을 알 수 있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조상풀이굿 외에 수 없이 젯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행사들이 많고, 특히 신도들은 문교주에게도 큰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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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 통일교본부 2층에 있는 문교주 방에서는 실로 기상천외한 의식이 벌어졌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간부 유 광렬 등 여러 명이 각국 대표로 분장하여 문교주 앞에 항복하는 절을 하는 의식 인데 예를 들자면,소련대표 00 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절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몬도가네식 의식을 행하기 위해 차려지는 호화판 젯상과 의복에 엄청 난 경비가 소요됨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문교주는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해원풀이굿을 하나 사실은 통일교의 역사에서 젊음과 재물과 정조를 희생당한 산 사람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더욱 급선무일 것이다.

산 사람과 원수지간에 있으면서 죽은 자 조상까지 원한을 풀어주는 의식을 행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문교주 조강지처를 버리다
1945년 4월 28일, 문 용명은 그의 나이 25세에 평북 정주군 관주면 관삽용에 있는 長腰敎會에서 崔先吉과 결혼식을 올렸다.

최선길은 長腰長老敎會의 독실한 신도였고 그 교회 집사인 큰 오빠 崔 重吉 씨의 뜻을 따라 재건파교회로

교적을 옮긴 신앙경력은 있으며 작은 오빠의 이름은 崔重建씨이며 그의 부친은崔 竜日씨였다.

1946년 음력 3월, 서울 흑석동에서 신혼생활을 하던 중 장남인 文 聖進을 낳았다. 문은 1946년. 6월에 평양에 월북했다가 1 · 4후퇴시 부산으로 남하하여 그 이듬해 부산에서 비밀히 집회를 갖고 있을 때, 본처 최선길과 재회하였다. 그때 이미 문 선명주변에는 여인들의 그림자가 그치지 않고 따랐으며 문교주의 문란한 생활과 신앙관이 맞지 않았던 최 여인은 남편 문 선명과 충돌했으며 악착스럽 게 문교주의 여 인군상들과의 관계를 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문교주는 처인 최여 인을 몰래 피해 다녔으며 조강지처와 자식까지 배신하고 버린 그는 부산 범냇골 (범천동) · 수정동 등지를 전전하면서 복귀원리 (피가름의 교리) 를 중심삼고 집회를 갖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최 여인도 자기와 자식까지 배신한 남편을 찾아 형사들까지 동원한 바 있다.

문교주의 피가름의 비 밀을 알고 있는 최 여 인은 문교주를 찾아 다닐 때마다 광신도들로부터 제지를 당했고 정면에서 난투극을 벌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문교주는 본처인 최선길에 대해 신경과민이 되었고 그 때마다 신도의 돈뭉치를 치마폭에서 동원했고 최 여 인의 반대역사를 막는 데 수 많은 돈을 날렸다고 그의 측근에서 따랐던 X씨가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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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여인은 배신한 남편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에서 계속 추적하다가 1957년 1월 8일에 끝내 합의이혼형식으로 문교주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때 최 씨의 작은 오빠인 최 중건씨와 통일교측 대표였던 X씨는 그들간에 사돈지간이었으므로 문교주와 최 여인에 대해 합의이혼이란 결론을 내렸던것이다.

그때 통일교측 대표 (현재 이탈했음) 였던 X씨는 위자료조로 50만환을 최 여인 에게 주었고 아들 성진이는 반공포로 교환하는 식으로 교환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리하여 최 여인은 혼자 몸이 되었고 문교주는 아들을 데려 온 것이다. 그러나 최여인의 가슴에 맺힌 채 원한의 감정이 사그러질리가 없어 계속 문교주를 괴롭혔고 아들을 빼앗아 왔다가 빼앗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최 여인의 작은 오빠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처음에는 저도 용명 “문교주” 이의 행동을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드 동생 선길이더러 “참으라” 고 달랬으나 지금은 “용명이 그 X의 새끼, 개X의 새끼”」라고 분을 터뜨린다.

최 여인은 그후 1960년대에 문교주의 집단인 통일교로부터 피해를 당해 님 편을 빼 앗긴 다른 두 여 인 (유 효영씨 부인 및 유 효민씨 부인) 과 함께 통일교의 진상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동분서주하였던 사실이 있다.

최 여 인은 서울 영락교회에 몸을 담고 신앙으로 그 아픈 배신의 상처를 달래고 있다가 지금은 상도동의 모 교회에 나가고 있다.

문교주와 이혼당시 통일교측 대표였다가 현재 이탈한 바 있는 유 모씨가 최여인의 친척 오빠를 75년도에 길거리에서 만나 최 여인의 소식을 물었더니 언젠가도 수사기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최 여인의 신원을 보장하겠다고 하면서 그 내용인 즉,문교주의 동생인 문 승균 (한국 티타늄 대표) 이 한 달에 한 번씩 통일교 신도들 몰래 최 여인집에 보내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보기 에 혼자 사는 과부가 윤택한 생활을 하는 데 의심 품었고 더구나 이북 말을 쓰는 중년남자가 드나든다는 데 수상하게 여겨서 시나 간첩이 아닌가 하여 수사기관에 신고하였다는 것이다.

재림주로 자처하는 문교주가 신앙이 독실한 본처를 버리고 17세의 앳된 소녀 한 학자 (현 부인) 와 재혼을 한 처사는 인간 윤리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탈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기에 아들인 문 성진도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다. 더구나 이렇게 저렇게 태어난 배다른 이복형제들의 맏형으로서의 고민과, 자신과 불과 세 살 차이 밖에 안되는 한 학자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모셔야 할 그로서는 말 못할 고민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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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서 또 어린양 혼인장치

그 무렵 교주는 서울 청진동 여관에서 X여인과 어린양 혼인잔치를 했고 김모여인도 문에게 미쳐 남편을 버리고 가출한 채 문이 묵고 있는 여관을 드나들고 있었다.

최 여인은 만약 이번에 남편인 문을 만나면 범냇골에서 몽둥이로 내 쫓아 버리겠다고 하면서 문의 소지품 일체를 집으로 가져 가겠다고 하자 박 씨는 문이 사용하던 성경책과 노트 (원리강론 원본을 기록한 것으로 현재도 박 씨가 보관하고 있음) 만 남겨 놓고 가라는 박 씨의 간청을 들어주어 지금도 박 씨가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여인은 만약 이번에 남편인 문을 만나면 단단히 보복을 할 각오와 결심을 굳혔다.

박 씨는 통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보물처럼 여기는 그 노트를 가지고 서울 청진동 여관으로 들어왔다. 와서 보니 이미 문은 주소나 행방도 남기지 않고 어디로인지 바람과 같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결국 천신만고로 헤맨 끝에 문을 만나 보니 그는 당시 관재청 모 고관의 부인과 같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엄 덕문씨도 드나들고 있었다. 이때 부인을 잃어버린 그 고관은 문을 잡기 위해서 서울 시내를 샅샅히 뒤졌고 당시 문의 앞재비로 알려진 박 씨를 잡아야 한다고 해서 박 씨는 부득이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박 씨는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혀 문이 유부녀인 고관의 부인과 어디로 그 행방을 감추었는 지 소재를 대라고 하면서 24시간 조사를 받고 심지어 전기고문까지 받았다. 박 씨는 악이 받쳐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 떼고 간신히 풀려나와 보니 또 문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박 씨는 혈혈단신 월남한 몸이라 찾아갈데조차 없었고 그렇다고 친구는 면목없어 못찾아 가고 돈도 떨어져 버려 어차피 문을 찾아야만 했다.

그 무럽 박 씨는 친구인 조 동석씨를 만났더니 조 씨는 다짜고짜로 박 씨더러 경찰이 알고 있으니 파하라고 하면서 돈 3만환을 주기에 그걸 받아 넣고 부산과 제주도로 도피해 버렸다. 그러나 돈은 바닥나고 하는 수 없이 죽으나 사나 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상경하여 간신히 문을 만났더니 당시 통일교에서 경영하는 경북 성주군에 있는 금광인 서진광산으로 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얼마동안 광산에 있다가 올라와 보니 문은 검정 찦차를 타고 다니고 있었으며 문을 만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만나주질 않아서 못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 주안에 가서 신도의 집에 있는 문을 만나려하자 신도들이 문이 박 씨를 못만나게 문을 빼돌렸고 이에 화가 난 박 씨가 모두 다 때려 죽이겠다고 흥분하자 옆에 있던 김 인철 (金寅哲) 씨가 말렸다.

박 씨는 문을 위해 경찰에 끌려가서 곤욕을 당하면서도 비밀을 지켜 주었는데 그 결과는 배신의 쓰라림 뿐이었다. 결국 박 씨는 서울 역전에서 지게꾼들과 함께 하루에 빵 3개씩 사 먹으면서 3일간을 노숙했다. 다행히 아는 친구를 만나 여비를 마련해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평양 숭실전문학교 출신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3개월만에 당시 돈으로 2억 7천만환을 융자받아 건축업을 시작했고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박 씨는 지금도 문이 돈이 생기니 자기를 완전히 배신했던 배신감에 원한이 사무쳐 있고 서진광산 시절의 일기를 보면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눈물없이는 볼 수 업을 정도였다. 문을 위해 만 7년간 가방 들고 따라 다녔던 박 씨를 헌신짝 버리듯이 차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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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아이를 밴 김명희 일본으로 밀항
당시 연대생이었던 오 승택 (현재 사업운영) 은 문의 아이를 밴 김 명희와 일본으로 밀항을 했고 문을 따르던 충성스런 유 경구는 죽었다. 그러나 황 환채 (현 통일교 주요 간부) 는 그대로 문을 따라 다니고 있었다.

문 교주는 자기에게 굽실거리고 맹종·아첨하는 자는 좋아하고 직언·충언을 하는 자를 싫어하는 성미였고 문선명은 바른 말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결국 박 씨를 배신해 버리고 만 것이다. 언젠가 건축가이며 문 교주의 오랜 친구인 엄 덕문이 인천에 내려와서 문 교주가 여의도에 큰 건물을 짓는 데 같이 일을 하라고 권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문선명과 그 활동
1884년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평양을 중심으로 신앙인들의 열심은 대단했다. 또한 그 유명한 부흥목사들에 의하여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지칭되었다. 문 용명이 성장하던 소년시절에 이 용도 (李龍道) 라는 부흥목사의 열변과 피와 땀을 쥐어짜는 듯한 눈물의 기도는 많은 신도들에게 깊은 감명과 은혜를 주던 그런 시대였다.

문 용명은 8·15해방당시 박 재봉 (朴在奉) 목사의 “성신강림 40일 부흥회” 를 늘 들먹이면서 자신의 복귀섭리관과 결부시켜서 말을 많이 했다. 이러한 시대적 종교활동으로 보아 재림주는 한국으로 강림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기 위한 심사였고 한 학자여인의 연령으로 보아 모든 은혜로운 집회의 의의를 문 교주는 자신의 섭리관에 결부시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북 철산 (鐵山) 의 새주 (主) 파와 복중교회 (腹中敎會) 의 “육신으로 오는 주님” 을 모시기 위한 그들의 준비를 문 교주는 자기 자신에게 결부시켰다.

문 교주는 1950년대에 설교할 때마다 새주파와 복중교회파가 지혜가 없어서 자기가 “육신으로 오시는 재림주” 임을 몰라 보았다고 술회하곤 했다. 이것이 문 선명이 자기자신을 재림주로 부각시키기 위해 우매한 신도들을 미혹하기 위한 숫법이었다. 그러므로 통일교 신도들은 가짜재림주를 만든 책임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문 선명의 정체가 백일하에 들어나 메시아가 아닐 경우 그 모든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평양에서 시작한 통일교의 문 선명은 혼란한 시기에 그의 생애를 잘 조화하여 합리화 시켰으나 오늘에 와서 그 거짓의 정체가 점차 들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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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두려움은 여인들과의 불륜관계

문 교주가 제일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여인들과의 불륜한 관계인데 이것은 교단간부들도 확증이 없고 또 피해여인들의 일방적인 발설만 가지고는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 교주가 어떤 여인과 음행을 했느냐 안 했나냐가 문제가 아니라 문 교주가 외치고 있는 바로 탕감복귀원리 자체가 문제이다. 그 교리는 엄연히 피가름을 해서 중생해야 하는 원칙이 제시되어 있고 문 교주,즉 참 부모의 혈통으로 거듭나야 할 원리를 내세워 재림주로 등장한 문 교주의 혈맥 (血脈) 을 절대적으로 하는 것으로 못 박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36가정까지 혈통이 대입 (代入, 문선명과의 섹스관계를 말함) 되었고 문 교주와 36가정의 간부들은 이것을 최대의 하늘의 비밀로 간주하고 있고, 자기네들끼리도 숨기고 있어야 할 문 교주와의 약속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는 36가정에서 이탈한 몇 사람의 증언으로 입증되고 있는 바, 미구에 한 번 쯤은 폭로가 될 것이 틀림이 없다.

문 교주 주변에 있는 여인들을 중심하여 쳇바퀴 돌듯이 맴돌은 상태이니 복귀 원리의 원칙에서 생각해 보면 천의 얼굴을 가진 통일교의 모습과 바로 그 속에서 돌고도는 피가름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문 교주 주변에 남편과 이혼한 과부들이 많았고 이들이 피가름 역사의 모체였고 이리저리 움직인 장본인들이라고 생각하면 많이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인들은 혼음원리를 추종하는 바로 그러한 사실이 하늘의 뜻으로만 알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제일문제인 것이다. 통일교인들이 알고 있는 복귀원리는 성서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교리라는 사실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 오늘 기독교인들의 사명이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문 교주의 복귀원리에 미혹당해 파괴된 가정들이 수 없이 많으며 피해자들은 당하고도 말못할 입장이고 또 알면서도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 입을 못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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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복귀원리의 이론과 형성과정

혈통복귀 역사를 구상케 된 문 교주의 과거배경을 살펴 보는 것도 의의 있는 일이다. 1919년 기미 독립운동 이후 가중되는 일제탄압으로 평양지방에는 지하 깊숙히 잠복하고 있던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 이상한 주장이 나 돌기 시작했다.

에덴동산의 원죄의 장본인들이–아담·하와·천사장 (루시엘) –타락의반대입장에서 그 원죄를 청산하는 피가름의 역사가 혼음원리의 원조를 이루고 있다.

피가름 원죄를 성서적인 뒷받침을 하여 계승해 온 새로운 성령운동의 기수였던 황 국주 (黃國柱) 에 의한 해방 후 평양의 광해교회 시대와 자칭 대성모 (大聖母) 정 득은 (丁得恩) 여인의 복귀원리의 혈분역사 (血分役事) 와 경기도 파주에 있던 이스라엘수도원의 성혈운동 (聖血運動) 김 백문 (金白文) 등의 계통을 문 교주는 다 거쳐왔다.

특히, 정 득은여인의 성서적인 이론을 자기의 것으로 도용·각색하여 실천무대에서 세계적인 혈통혁명을 부르짖고 나온 것이다. 1947년 정 득은여인의 구술 (口述) 로 그의 제자 방 호동 (方好童) 이 책임·집필한 “생의 원리” 는 통일교 원리해설의 원서 (原書) 라고 할 수 있다.

문교주는 1946년 초 정 여인이 주최한 대성심기도원의 집회 때 정 여인의 내의까지 세탁해 주는 등 충성을 보였고 정 여인의 속옷을 받아 재림주로 둔갑을 하고 나온 것이다.

문 교주는 1958년도에 청파동 통일교 본부교회에서 수 차에 걸쳐 정 여인과의 관계를 털어 놓았다. 즉, 40일노정의 피 묻은 빨래를 세탁하여 주면서 충성을 다 하고 그녀로부터 받은 축복을 이야기 했다.「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부인이다」라고 주장하는 정 여인과 문 교주는 복귀관계 (섹스관계) 를 가졌다고 수없이 말했으며 정 여인이 문 교주의 주관을 받아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여 악령에 걸려 미쳐서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죽었다고 하였다.

또한 27세 때 문 교주는 1946년 1월부터 6개월간에 걸쳐 겨기도 파주에 있는 김 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서 자기보다 세살 위인 김 백문으로부터 복귀원리의 영향을 받았다. 그 당시 김 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는 문 선명 뿐만 아니라 박 태선 · 나 운몽 · 지 용성 등 제씨들이 드나들었다고 김 백문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편리를 봐 주던 정계의 거물급 인사였던 김 모씨는 증언하였다.

김 백문은 황 국주에 의해 영향을 받았고, 1945년 12월에 평양으로부터 월남한 신령파 정 득은 (丁得恩) 여인의 대성수도원을 찾아 자신의 피가름 원리와 정 여인의 주장이 일치함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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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교리는 황국주 · 김백문 · 정득은의 이론

문 교주는 황 국주 · 김 백문 · 정 득은 등 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기식으로 이론을 구축하여 기로 해 놓은 것이 바로 원리강론이라는 통일교의 교리인 것이다.

문 선명교주는 1957년경에 김 백문이 동대문구 창신동 부근에서 노환으로 죽었다고 신도들에게 말했고 통일교인들은 김 백문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김 백문은 어엿이 살아 있다. 경북 칠곡군 인동면 출신인 김 씨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결혼 · 이혼 등 경력을 갖고 있고,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 1번지 청수교회란 간판을 걸고 그 나름대로 신도들을 이끌고 있다.

1954년 서울 성동구 흥인동 집회시에 정 득은여인으로부터 피가름을 받은 정 여인의 제자인 김 한 (金漢) 씨가 문 교주를 찾아 와 문 교주의 추종신도인 간부 유 모씨에게 “문 교주가 피가름 섭리의 혼음교리를 가지고 있으니 당신은 조심하라” 는 경고의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간부 유 모씨는 “우리도 이미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해서 돌려 보냈다” 는 것이다.

문 교주는 일찍이 16세 때인 1936년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하늘의 계시에 의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예수가 못다한 사명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억만 사탄과 영적으로 싸워, 사탄의 정체와 인간타락의 비밀을 하나님으로부터 알아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믿기 어려운 거짓이며 증거능력이나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타락한 인류의 조상이며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룰 수 있는 신천신지의 세계의 조상이요 참 부모인 그의 사명노정으로 보아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딸인 하와를 사탄에게 잃어 버림으로 아들인 아담을 빼앗겼듯이 하나님은 사탄세계에서 딸을 찾고 아들을 찾아 세우는 섭리로서 문 선명을 제3아담으로 세우기 위하여「나는 여호와의 부인」임을 자처했던 대성모 (大聖母) 인 정 득은 여인과의 사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축복을 받기 위해 정 여인의 피 묻은 속옷까지 빨아 주었던 소위 40일노정은 제3아담으로 세움을 받기 위한 기간이었다고 문 교주는 제자들게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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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속의 혈통복귀 주장

원리강론 227페지 “중생론” 에서「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서 두 번 태어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우리를 낳아 주는 부모가 아니면 아니된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들을 원죄가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 선의 부모는 누구일것인가?」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가 없는 것이다.따라서 선의 부모가 타락한 인간 가운데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모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여야 하는 데 그렇게 오셨던 분이 예수였다. 따라서 그는 타락한 자녀들을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지상천국을 이룩하시기 위하여 참 아버지로 오셨던 분이시다.」

「그런데 아버지 혼자서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는가? 타락한 자녀들을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해서는 참 아버지와 참 어머니도 계셔야 하는 것이다. 죄악의 자녀들을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 그 참 어머니로 오신분이 바로 성신이시다.」

또 원리강론 230페지에서「부모의 사랑없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성신의 감동에 의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면 영적 참 아버지이신 예수님과 영적 참 어머니이신 성신과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영적 참 부모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그를 믿는 신도들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주입되어 새로운 영적 자아로 중생케 되는 것이니 이것을 영적 중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영 · 육이 아울러 타락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육적 중생을 함으로써 원죄를 청상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 중생에 의한 육적구원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재림하시게 되는 것이다.」

또 원리강론 389페지에는 재림주를 중심한 실체 가나안 복귀노정이란 제목에서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혈통관계가 꾸미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가지고 하나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비밀을 성서에서 알아 보기로 하자」

또 원리강론 388페지에 보면「예수님은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원죄 없는 독생자로 오셔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 (接) 붙이어 한 몸되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복귀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 부모로서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접붙여서 원죄를 벗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창조본연의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중생이라고 한다」

원리강론 389페지에 보자.

「아무리 잘 믿는 기독교 신도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내려오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전편 제4장 제1절) 이와 같이 기독신도들은 하나님 앞에 혈통이 다른 자녀이기 때문에 양자가 되는 것이다 (롬8 : 23).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한다」

이상과 같이 장황하게 통일교 교리서인 “원리 강론” 에서 인용한 바를 풀이해보면, 문은 예수의 재림체요, 그의 후처인 한 학자여인은 성신의 화신 (化身) 이며 참 부모로 등장하는 문 교주 부부가 원죄있는 타락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중생시켜야 할 사명이 통일교의 중심사상이요, 피가름 역사의 강령으로 된 복귀론이다.

그러므로 혈통혁명의 교리적 근거가 원리강론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장하기 위한 외적 활동이 바로 반공입네, 국위선양활동입네, 하는 정치적인 제스츄어이고 여기에 사람들이 미혹되고 상당수의 지성인들과 지도급인사들마저 통일교의 속셈을 모르고 나타난 외형적인 활동만 보고 애국적이니 국가이익에 보탬이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통일교 신도들은 “나의 맹세” 속에서도 명시 된 바와 같이 참 부모 (문선명과 한학자) 의 혈족임을 자랑하는 조직화된 혈맥의 계보 속에 극비리에 되었고 추종인의 다수는 혈통섭리와 같은 내막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의 외적활동의 이념과 활동에 매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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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신녀 (接神女) 정득은의 ‘생의 원리’ 전문
원리강론에 있어서 타락론과 복귀원리의 원서라고 할 수 있는 정 득은여인의 “생의 원리” 를 보면 피가름의 꼬리가 더욱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통일교 원리강론의 원본인 정 득은의 “생의 원리” 를 요약.

생의 원리는 창조론 · 복귀역사 · 생의 원역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고 있는데, 1947년에 정 여인의 구술을 방 호동이 받아 쓴 글을 그대로 책에 옮긴 것이다. 특히, 창조론의 “혈통적 신의 백성” 이란 글의 내용을 보자 (원문 그대로 싣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당신의 백성을 번식하시려고 예정하셨던 섭리이다. 이러한 뜻을 루스벨 당시 천사장이 알게 되어 이브를 유혹하여 마귀에게 자식을 낳아 주셨으니 이가 곧 가인이라. 아담에게는 이부 자식이다. 아담도 하나님께로 버림을 받았으니 결국 마귀에게 지배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씨의 결과를 전수치 못하였다.

이브가 사탄의 딸이 되므로 사람의 딸이란 명칭을 받게 되고 사람의 딸의 아릿다움에 미혹되어 생명까지 버렸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금일에도 있다. 하나님의 자식들이 사람의 딸의 아릿다움을 보고 저희 마음대로 장가가고 시집간다 하였다 하니 하나님의 딸들이라 칭함을 받도록 회복하여야 한다.

혈통적 선민의 번식은 사람으로부터나 노아로나 아브라함으로나 예수님으로 시작을 하였어도 결과를 맺지 못하였다. 택한자의 영감적 번식이 시작하여서 그 결실은 육신에 돌아가고 생능적 신 (生能的神) 에 결과적 결실을 수락치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수락목적을 섭리에 두시고 잃은 것을 회복하시는 데 선지자와 전도사, 예언자를 보내시어 교도했다. 사탄도 그의 회복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힘을 다 해 갖은 유혹을 다 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증거판이 성경이란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 “이는 이로, 피는 피로, 손은 손으로, 목숨은 목숨으로 갚으라” 한 법이 있다. 이것이 잃은 것을 찾기위한 율법이라는 것이다. 하와를 잃었으니 하와를 찾아 하와로 하여금 아들을 찾으려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예언자이며 선지자인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의 징조를 보라.「처녀가 아이를 낳으리니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아이를 낳게 한다는 뜻이 곧 하와가 누시엘에게 유혹되어 가인을 난 것을 회복하려는 뜻에서 행하여진 일이다.

당시 유대법령에 그러한 불법자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는 법이니 약혼자가 시집가기 전에 잉태하였다는 것은 선한 일이라 할 수 없다. 네가 이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는 명령 앞에 죽음을 무릎쓰고 범한 것이다. 이것은 죽음에 내려 간데서 뽑아 내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생명을 내 걸고 용감하게「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다 이룹소서」하고 승락한 마리아의 믿음이 야말로 현대여성에 비추어 볼 때 대단하다. 할 것이 다하여 사탄의 씨가 박힌 것같이 하나님의 씨는 박힌다.

마리아는 예수를 배에 싣고 보니 목숨을 잃어 버릴것이 겁났던 것이다. 즉시 일어나 산으로 도망하여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에게 피신하였으니 그들은 반갑게 만나서 서로 축복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신의 섭리를 받아 순종하고 아들을 낳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는 그 태도를 완전히 정하지 못하였다. 거룩한 뜻을 받고도 세속에 매어 거룩히 구별 못하였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게 된 원인이 요한에게 책임도 있지만 마리아의 잘못이 더 많은 것이다.

요한은 자기가 맡은 사명을 못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거니와 마리아도 요한을 목 베게 하였고 예수도 십자가에 달리게 하였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고, 요셉과 살지 않았어야 하며 또 신의 뜻을 따라 예수를 완전케 하여야 할 것이며 수종들어 충실한 모친이 되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수방관하였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자기가 할 의무를 못하고도 예수에게 그 무엇을 구하고자 할 때, 그는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라고 배척을 당하였다.

예수가 나의 때가 안되었나이다, 하신것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이 알아 줄 때가 안되었나이다 한 뜻이다. 또 어머니 조차도 몰라주니 어찌 믿지 않는 자들이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하와를 찾았고 소생까지 얻었으나 먼저 장성한 불의에 눌리어 완성을 맺지 못한채 역사를 남겼으나 결실은 맺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왔다고 한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몇 천년 역사를 두고 회복의 섭리를 자기일신에 지니고 수취 (收取) 하시려는 것은 너무 약하다고 쓰였으나 반대로 너무 사랑이 많으셔서 권능을 나타내기 위하여 돌아와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완전히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멸시하여도 세인 (世人) 을 불쌍히 여겨 너희가 듣지 않으나 내가 좀 더 참자하시는 은혜로다. 인내는 소망을 낳고 소망은 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결실케 하나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전기 마리아는 무슨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느냐 하면 마리아가 자기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그 책임 무엇이냐?

마리아는 무슨 책임을 못하여서 예수로부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는 말을 들었는가? 자기 몸을 동정녀로 하나님께 드린 일은 성공이었으나 그 태도를 완전히 결정 못한 것이다.

이는 무엇인가? 처음 수태하게 한 자가 참 남편이니 본부 (本夫) 에게 찾아 가야 할 것이다. 헌데 요셉과 살았으니 하나님께서는 동정녀를 찾았다가 다시 잃은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사탄의 이부자식 (異夫子息) 을 만들어 키웠도다.

사라는 첩의 자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니 이를 당할까봐 첩의 소생을 추방하였다. 본 자손을 키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본 자손으로 구별하여 주신 씨이니 귀중히 여겨졌던 것이다. 또 이삭의 소생에서와 야곱이 복중 (腹中) 에서 다툴 적에 리브가는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지시하실 때 “네 복중에 두 족속이 들었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며, 작은 자가 큰 자를 주관하리라고 한 지시를 받고 리브가가 야곱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또 에서가 받은 축복을 뺏어 야곱에게 주었으며 에서가 그를 죽이려 할 때 외삼촌네로 피신시켜 보호하였다.

또 아비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으려 할 때 발각되면 나를 저주하리이다 하니 그 저주도 내게로 돌리라 하고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계시하던 말씀을 기억하여 자기할 바 의무를 다 하셨던 것이다. 또 여 선지자 미리암은 모세를 키웠다. 강폭한 바로왕의 탄압중에 죽음을 각오하고 모세를 살렸고 그를 키울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셨던 것이니 모세는 바로 궁전에서 호화롭게 자라며 그 나라 법률을 다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불리한 환경일지라도 마리아는 예수를 수태할 때 어떠한 입장에서 수태하였는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보면 그 장에 수태역사가 기록되어있다.

“장차 거룩하신 이가 너를 덮으리니 나시는 이가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여러 나라의 머리가 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한 어마어마한 말씀을 받고 그를 수태하고 자기 행동을 구별치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을 다 하였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도 예수님을 존중히 사랑하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출세하시게 하여야 할 것을 목수인 요셉의 아들을 만들었고 또 그의 앞 길을 막는 일을 하였도다. 누가복음 2장 4절에 보면 얼마나 아기 예수님 자신은 배워야 할 것을 알고 성전에서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 묻고 배우고 하셨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찾았다고 하니 누가복음 2장 49절에 예수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나이까?

예수 자신은 12살 때에 성전에 이써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을 알고 성전 안에서 장성하시려 하셨던 것이다. 그런것을 모친 마리아는 이를 촌으로 데리고 가고야 말았다. 모세가 바로의 궁에서 교육을 받은 것과 같이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마리아는 그를 성전 안에서 키우도록 했어야 할 일을 목수의 집에서 키우고 말았다.

수태할 때 들은 말이 있는 데 잊어버렸을 리는 만무하리라,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못하였나이까?란 말을 듣고 마리아는 찔림이 없었을까? 마땅히 증거하여야 할 일을 증거하지 아니하고 나사렛 촌에 목수의 자식을 만들어 멸시와 천대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짓밟히게 하였도다.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웠어도 이스라엘 민족이 듣지 않았는 데 목이 곧은 사람들이 목수의 말을 듣겠는가? (요4 : 3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쫓아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내 양식이라 (요5 : 36).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여기 있으니 내가 하는 일은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 사람에게 증거를 지켜도 증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증거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이 날마다 행하시고 행하는 것을 의롭게 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신 스스로가 나타내며 증거하는 것이 다하였으면 아무의 증거도 필요치 않다.

사람의 증거보다 더 확실하다 함을 말씀하셨나니 마리아가 증거하여 주지 아니하고 요한은 또 길을 예비하러 와서 길을 예비하지 못하였으니 하러오신 그 일을 못하게 됨을 아시고 근심은 끊임이 없었다. 요한은 안식에 들일 길을 예비하러 왔고 예수는 안식을 가지고 쥔으로 오셨는 데 전자도 아니믿고 후자도 멸시를 하였도다.

요한복음 5장 25절, 죽은 사람이 하나님 아들의 소리를 들으니 듣는 자도 알아내리라 하심이 죽은 자를 알리러 오셨나니 그가 이 알리고자 하는 답은 어떠한 답인가? 말씀을 듣는 자로 이에 산자가 아닌가? 죽은자가 말씀을 들을 수가 있는가?

즉, 음부에 나려 간 자 곧 죽은 자요, 이는 언제 죽은자인가? (엡2 : 1).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 (엡2 :2). 그때의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속을 쫓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니 이 권세 잡은 자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 속에 지금 일하는 신이라,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누군가?

하와가 하느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사탄의 말을 순종하여 사탄의 자식이 됨으로 음부에 내려 안침을 받아 공중권세 잡은 자의 수하에 있는 것을 끌어내어, 즉 죄로 죽은 것을 다시 알리려 하심이니 곧 태초에 하나님이 코에 바람을 불어 넣으니 생명이 된지라 한 이 사람으로 마귀의 자식되었던 것을 불러 살리려는 일을 하시려 오신 것이다.

예수 말씀에 받는 자 외에는 알 수 없도다 (마10 : 27-28). 내 아버지의 뜻대로 계시를 받아야 된다고 하셨는 데 마리아는 받아서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리아의 실책이다. 사무엘의 모친 한나는 여호와께 구하여 아들을 낳아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 주심을 감사하여 그 아들을 일생 여호와께 드렸으니 하나님을 섬겼노라.

어려서 부터 (삼상1 : 26-28, 2 : 18)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성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알기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았다 (삼상3 : 19-21). 여호와는 사무엘에게 함께 하시어 그의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게 아니 하였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땅에 떨어지게 하신 것은 없으되 먼저 받은 자가 한나와 같이 자기 책임을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음란한 자의 자손인 목수의 아들로 주민이 인식케 한 것이 잘못이다. 마리아는 성결하여 스스로 분별하여서 예수를 성전에 드리고 착실한 하나님의 부인 노릇을 했어야 하나님께서 처음 잃은 사랑을 찾으시고 성결한 혈통의 자손을 번식하였을 것이다.

하와를 도로 삼킨 바 되었도다. 그러므로 역사 이래로 외아들 예수만 남은 바 되었도다. 그러면 4천년 역사를 두고 거둔 결과가 예수 하나 뿐이다. 예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어 역사이래 하나로 나타나셨나? 그는 아담 이래로 여러 선지자가 감당치 못한 것을 이겨 물리치었다.

마태복음 3장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가셨다. 성신에게 이끌리어 예수에게 시험하는 자가 와서 시험을 시작하였다. 시험에 대한 것은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먼저 40일이란 날자에 대하여 왜 40일을 굶주리시며 시험을 받으셨나 하면 4수는 태초에 에덴동산에 완전히 전개되는 숫자인 것이다.

하나님 1위, 아담1위, 하와1위, 아들1위, 4위가 결정되었던들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완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 4위를 완전결성을 못하였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파괴되고 인류는 권세자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러므로 4자를 두뇌에 두고 복귀역사 (復歸役事) 를 다하게 되었다.

역대를 하니 하나 보다 쉽게 계명을 보아도

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

② 너를 위하여 의자할 것을 만들지 말라.

③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④ 육축까지 안식하라고 하셨다. 이 안식세계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4수가 완전결정이면 평화다.

그러한 것을 시기하는 자가 이것을 완전결성 못하게 방해를 놓은 것이다. 그 4천년간을 두고 훼방자의 방해로 연장되어 나온 역사를 40일간 단축시켜 놓고 예수 혼자 감당하시는 역사이다.

이상은 정 득은의 생의 원리를 부분적으로 가감없이 장황하게 인용하였거니와 그 이유는 통일교의 복귀역사가 바로 이 정 득은이 생의 원리에서 표절했음을 입증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360頁

문선명의 원리는 정득은 교리의 표절
문 교주가 계시로 받았다는 원리강론은 결국 무식한 정 득은이란 접신녀의 교리의 표절인 것이다.

더구나 정 득은의 “생의 원리” 에서 복귀역사를 보면 통일교의 탕감복귀 이론이 바로 정 득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정 득은의 주장을 들어본다.

「아브라함의 아비는 우상 장사를 하였다. 왜 하나님은 우상 장사의 자식을 택하셨나? 이는 마귀가 가장 사랑하는 아담을 마귀에게 잃으셨으니 이를 복귀하는 뜻에서 마귀의 가장 사랑하는 우상 장사의 아들을 뽑아 내셨다. 그리하여 그에게 복을 주노라 하시고 언약의 조건물을 가져 오라 하셨다. 이 제사를 잘 드렸으면 아브라함 이후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은 인류의 대제사장국을 성립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실패로 말마암아 에덴동산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은 4백년간이라도 일진수의 노예노릇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러면 이 실패한 제사의 제물에는 어떠한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인가?

3년된 암소, 3년된 숫양, 암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 등 세가지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시대로 구분하면 소성기 (所成期) · 장성기 · 완성기의 3기로 구분하여 상대적으로 말하면 비둘기는 성신대상이요, 산비둘기는 사탄 대상이라, 염소는 음란죄 대상이요, 양은 속죄제물이요, 소는 육신대상이 되는 것이니 이 제사로 말미암아 소성 · 장성 · 완성, 겸하여 완전을 성취하려는 뜻이었으나 장성 · 완성 각기로 갈라서 깨끗할지라도 소성기를 가르지 못하였으니 아담이 그대로라, 아담당시의 실패를 회복하려는 약조물인데 제일 중요한 소성기가 부정한 그대로서는 전개할 수 없으므로 다시 연장한 것이니 즉, 나무 밑이 썩었는데 그 나무가 잘 자라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시초가 부정한 것은 아브라함도 회복치 못하고 4백년이란 고역의 날자를 복락동산 대신 받았다. 그리하여 3대에 걸쳐 야곱으로 하여금 가족적 구원의 성을 쌓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칭호를 받았다.

이 이스라엘의 아들로 말미암아 애굽에 들어가 번성한 백성을 인도해 내는 역할을 한 사람이 모세라는 대선지자이니 모세는 이스라엘을 우상국 애굽에서 인도해 냈거니와 예수는 인류를 사탄의 사슬 앞에서 끌어낼 임무를 가지고 당신이 먼저 가시덤불에서 나오는 역사를 당하시는 것이다.」

정 득은여인의 이 “생의 원리” 를 부분적으로 읽어 볼 때, 통일교 원리강론과 흡사함을 발견할 것이며, 연대적으로 정 여인의 생의 원리가 문 교주의 원리해설보다 수년 앞서 있으므로 문 교주가 정 여인에게서 그 교리적인 구상을 얻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362頁

김백문의 성신신학과 원리
김 백문의 성신신학은 1954년 3월에 출판된 것이었다. 그 책 첫 페이지 “啓” 에 이런 글이 있다.

「3위가 일체적으로 기독교 구원역사를 도모하심에 있어서 각위의 시대적 역사성을 고찰한 바, 구약이 부위 (父位) 의 역사시대로 되어진 것과 같이 신약은 자위 (子位) 의 주동적 역사시대로서 볼 수 있음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역사요 결국 삼위분의 섭리적 구원성과를 삼위분의 역사상 역사적 (役事的) 순리로 보아 최후 말로 결과시기에는 성신위 (聖神位) 가 하실 분담적 사명문제로 알게 된 때다」이상과 같은 김 백문의 이론은 통일교 교리의 책임분담 섭리로 본 시대구분과 같은 점에서 김 백문의 교리를 표절했다고 볼 수 있다. 즉,통일교 원리강론 102페이지 혈통문제 (죄악성 유전문제) 에서,

「회개에서 초혈통 (超血統) 에 실적을 보아야 할 것이 회개전은 예컨대 박씨 혈통에 최악성격자가 제3자로서 씨족을 달리 보리만큼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의 성체문제 (聖體問題) 인 성혈 (聖血) 문제에 결과적인 의의가 관련되는 사실인데 그리스도의 성혈은 속죄에만 가치적 본의가 다함이 아님은 원죄 · 속죄 다음으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와의 혈통성을 느끼게 하는 즉, 혈통적 갱결연 (更結椽) 을 위한 성현인 것이다. 그러면 이상 논한 김씨 자손이 순 혈통적으로 변하여서 그 다음 예수의 혈통성격을 닮아 새로남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통일교원리에서 본 강생론의 의미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본원리 (창세론 · 타락원리 · 복귀원리) 가 있고 이는 김 백문과 문 교주가 동거했던 1946년도의 5개월간에 문 교주가 김 백문의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터득한 김 백문의 교리라고 볼 수 있다.

1955년 당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혼음파동 사건으로 인하여 노량진 오집사댁에 피신하고 있을 때, 책꽂이에 진열되어 있는 김 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 를 보고 놀라면서 오 집사에게 저 책이 어떻게 여기 있느냐고 하면서 불태워 없애 비리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을 보면 자가의 독창적이라고 하던 원리가 이미 논리정연하게 미리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원리가 그 책에서 도용된 것을 신도가 간파하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 때문인 것이다.

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스라엘수도원에 정 득은여인이 1945년말 부터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문 교주는 이스라엘수도원을 중심한 신앙적인 수련기에 교리적인 체계를 김 백문으로부터 습득하였고, 1950년 말경 문 교주가 흥남형무소 복역 후 평양에 DT는 김 종화여인 집에서 정 득은여인을 만난 일이 있다.

그후 그들은 각기 월남하였고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정 득은여인이 문 교주를 찾아 헤매였으나 문 교주는 정 득은을 피해 다녔다. 정 득은은 문 교주의 부산 수정동집회소와 서울 흥인동집회소에 자주 나타났다. 그 때마다 모자협조관계론 (母子協助關係論) 을 정 여인이 주장했고 문 교주는 자꾸만 정 득은 여인을 피하였으니 그가 교리를 내세우는 원리가 남의 것을 표절 · 도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림주격인 김 백문은 세례요한 격의 문 선명의 활동을 멀리서 지켜 보았고 통일교 신도들 중에 골수분자인 박 모씨 같은 사람은 김 백문을 따라 통일교를 버리고 청수교회로 옮기기도 했다.

김 백문은 자신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재림주임을 신도들에게 암시했고 문 선명을 세례 요한격으로 장차 자기를 증거해 줄 섭리적인 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김 백문의 제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문 교주는 김 백문의 성서적인 이론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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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 · 박태선 · 문선명의 관계
삼각산에 위치한 대성신기도원의 원장 정 득은 (丁得恩) 여인은 1897년생으로서 48세 때인 1945년 11월경에 평양으로부터 월남하였고 그녀를 추종하던 신도들은 그녀를 대성모 (大聖母) 라고 불렀으며 그녀는 병든 자들을 기도로서 쾌유시키는 영통력의 소유자로 평양에서는 장로교회에 다녔던 인물이다.

그녀는 8 · 15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비밀리 모이고 있던 신령집단인 황 국주의 광해교회 (廣海敎會) 에도 자주 나갔다. 뿐만 아니라 평양 장재대교회의 우 하선장로의 부인이었고 현재도 통일교의 문 교주가 오늘의 발전이 있기까지 옥 세현여인과 신앙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였다.

하루는 정 득은여인이 옥 세현여인댁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오후 3시에 이남으로 내려가라」는 계시를 받고 그가 평소에 사사하던 박 을노 (朴乙魯) 씨에게 가서 상의한 바, 그 역시 동일한 계시를 받았노라고 증거하여 시간을 맞추어 월남하게 되었으니 그때가 엄동설한의 겨울이었다고 한다.

그는「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찌 남으로 내려가라 하시나이까?」라고 기도 했던 바「예수 모친 마리아도 추운 때에 호적하러 갔노라, 그러니 너도 가거라」하는 계시를 받고 용기를 내어 떠나 왔다고 한다.

월남도중에 하늘의 계시를 어기지 못하여 입고 있던 의복을 피란민들에게 하나씩 차례로 다 벗어주고 홋치마 저고리바람의 초라한 모습으로 가까스로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한 그녀는 삼판동 (현 동자동) 에 가서 20여명의 신도를 모아 집회를 가지고 한 편으로는 파주에 있는 김 백문의 집회에도 가끔 참석하게 되었다.

1945년 12월 말경 김 백문과의 상도동교회에서 방 호동 (方好童) 씨 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후원 아래 1946년 1월에 삼각산에 집회장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니 바로 이곳이 한 때 항간에 물의를 빚던 삼각산기도원이었다.

이때 김 한 (金漢) 이라는 연세대신학생의 전도로 이 요한교사 (현 통일교 간부) 를 알게 되었고 이 요한은 서울에 나와서 박 태선집사 부부를 전도하여 약 1개월간 같이 기도하다가 의견 충돌로 박 태선부부는 그들의 집인 수색으로 가 버리고 정 득은여인 일파는 경제적인 타격이 너무 심하여 1950년 3월경에 삼각산을 내려 와서 모였던 신도들은 부득이 분산하고 말았다.

그후 1950년 6월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수복이 되자 용산구 원효로 2가에 에덴유치원을 창설하여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한편 구호사업을 주민들에게 하였고 1950년말경 1 · 4후퇴당시 문 선명이 주관하던 평양 육교리 간판 없는 광야 교회의 주인이었던 김 총화여인 집에 나타났다.

그후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계시리에서 장로교회를 다니며 봉사하다가 교회 내분으로 이단시 당하여 서울 흑석동으로 올라와 이 용은목사의 친척이 경영하던 교회에 다니다가 한강을 건너 서울에 들어와 용산에서 은신하고 있던 중 김 연 (金演) 을 알게 되어 교회의 협조를 받아 용산구 신계동에 기도원을 창설하게 되었으니 그 때가 1953년 2월경이 었다.

그녀는 경제적인 기반이 없는 데다가 사회적인 핍박을 받아 가며 기도생활을 계속해 나가면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초라한 순례자라고나 할까? 그들은 적극적으로 크게 확장을 위해 전도생활을 하지 않고 오직 심신의 수련생활만 전념했다.

현재 한국기독계 이단자들로서 가장 큰 물의를 빚고 있는 통일교의 문 서명이나 전도관의 박 태선도 극히 짧은 시일이나마 정 여인을 피가름역사의 모체격 (母體格) 인 원조 (元祖)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정 여인이 운영하고 있던 대성심기도원은 어떤 곳인가, 그 내막을 살펴 보자. 대성심기도원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교리니라」
① 심신의 수련으로 혈육적 욕심을 초월하고 심중에 예수님을 모시고 피와 살이 전폭으로 기독교화 하기 위하여 수도함을 목적으로 함.
② 성경을 토대로 삼아
③ 예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러 왔노라 하여 온전케 하기위하여 받으신 고난을 힘입어 선지자의 예언하신 말씀을 한 말씀도 어김없이 이행하셨음을 본 받아
④ 우리는 기독교의 교훈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의 예언「너희는 나보다 큰 일을 하리라」하신 말씀을 이루려 심신의 수련을 쌓아 주의 거룩하심같이 우리도 거룩하여 대성심의 뜻을 성취하려는 데 있음 <아멘>

‘동방의 의인’ 이라 자처하고 나온 박 태선의 혼음역사를 김 경래가 취재하여 1957년 3월 17일자와 3월 18일자 세계일보 지상과 실화 (實話) 잡지 동년 6월호에 보면 혼음역사의 계보와 실상은 다음과 같다.

박태선의 혼음
「박 태선 일파의 혼음은 1947년 5월 이후에 평양에서 남하해 온 정 득은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혼음파의 본부인 삼각산에 주거를 정한 정 여인으로부터 정여인의 교리에 감복한 박 태선부부는 수색에 있던 자기 집을 집회장소로 제공했고 그들은 당시 수색장로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정 득은여인의 연하에 추종신도인 이 태윤 (李泰允, 1958년대 통일교신도였음) 과 박 태선을 중심으로 3개월 동안 기성교회 신도들이 모였으며 박 태선은 정 여인에게 설교를 받아 김 백문에게 성서해석법을 배워서 영체교리 (靈體敎理) 를 체계적으로 세웠는 데, 박의 영모론 (靈母論) 은 바로 여기에 근러하고 있는 것이다.

50대의 중년여인인 정 여인은 먼저 삼각산기도원을 중심한 세 사람 김 한 · 방 호동 · 이 수완에게 혈분 (血分) 을 하였고 김 한 (金翰) 은 민 은순 (閔恩順) 여인과 혈분하였고 민 여인은 복귀된 후에 그의 남편과 육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이혼을 당하였고 민 여인은 다시 이 태윤과 혈분을 했다. 이 태윤은 다시 백 목사 부인인 장 애삼 (張愛三) 과 극비리에 혈분을 햇으나 방 호동 (37세) 만은 혈분을 맺지 않았다.

이 수완은 26세인 원 경숙 (元慶淑) 과 혈분하였고, 원 경숙은 박 태선과 혈분하였고, 원 경숙은 박 태선과 혈분하였다. 박 태선은 존귀한 성혈 (聖血) 을 먼저 자기 집안에서 행하기로 마음 먹고 그의 장모와 형수에게 권한 것이다. 박 태선의 처는 원 경숙과 같이 이 수완에게 혈분을 받고 박 영창에게 권하였다. 박 영창의 말로는 박 태선의 처와 처음에는 잘 안되다가 두 번째 겨우 되었다 한다.

행하는 방법은 교조적인 정 여인의 입회하에 정 여인이 기도를 드리고 나서 하는 혈분행위가 진짜라고 하며 남자가 여인에게 혈분할 때는 남상여하 (男上女下) 이고 여자가 남자에게 전할 때는 여상남하 (女上男下) 가 된다」(이와 같은 사실은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후 부부행위와 같음). 이러한 방법으로, 혈맥을 중심한 피가름역사의 교리는 비밀리에 확산된 것이다.

또한 김 경래의 취재에 의하면 기성교회 목사 백 X X의 부인 장 애삼여사와 이 태윤과의 영체교환이란 명목의 성관계를 통해 장 부인은 유인되어 신흥종교단에 입단하고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일체를 남편인 백 씨에게 고백했다.

백 목사는 이 말을 듣고 심신의 고민을 견디기 어려웠다. 목사 체면에 이혼을 할 수도 없어 김 경래에게 고민하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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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의 딸, 우리 모친은 인간 이하 ···
그후 1967년 2월경 백 목사부부는 서울에서 혼음파의 주역인 정 득은여인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딸은 자기 모친을 비난하면서 남녀신도들을 삼각산에 모아 놓고 영체교리를 해설했으며, 우이동에서 신도 20여명을 데리고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 모친은 이간이하인 불결한 행동을 아무도 권고하는 이도 없고 법에 고발하는 자도 없다고 한탄하더라는 것이다.

백 목사 부부는 정 득은의 딸을 만나기 전에 박 태선을 두 번 만났으며, 그 달에 백 목사는 부산에서 성민육아원 (聖民育兒園) 을 경영하였으나 재정란으로 막대한 부채를 걸머지게 되자, 백 목사의 부인은 혼음동지인 박 태선을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백 목사는 정 득은여인의 딸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혼음교리를 신앙하는 정 득은의 유혹에 빠졌던 그의 부인의 피가름사건을 세간에 공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957년 3월 3일 백 목사는 서울 원효로에 있는 전도관에 가서 정문에 버티고 서서 들어가는 신도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박 태선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그런 개소리 말라, 그놈은 제 장모와 형수를 XX고 원 경숙이와도 혼음한 놈이다. 박 태선의 처도 박 XX란 놈과 혼음했다. 당신네들을 속인 뱃장 검은 놈의 정체를 이제 당신네들에게 보여 줄테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 처도 혼음파에 속했었소, 이제 와서는 대중 앞에 공개하고 회개하려 하오.

영체파의 교주도 살아있소. 여러분들이 전도관에서 떠남으로 박 태선을 회개하도록 결심을 가지시요」그때에 그 광경을 모여서서 바라보던 박 태선 신도들과 길 가던 사람들은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백 목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설마 하니 그리스도를 업고 예수 사명을 한다는 신성한 교회 교주가 제 장모와 형수와 혼음했다는 말인가?

백 목사가 그대로 서서 계속 전도관 문안으로부터 광신도들이 달려나와 백 씨를 에워싸고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백 씨는 곧 경찰에 고소하여 폭행과 혼음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니 이것이 바로 김 경래기자의 취재로 세계일보에 특종보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박 태선은 신문광고란에 이를 부인, 반박성명서를 내고 유력한 정계인사들을 동원하여 무마공작을 벌리는 한편, 육아원을 원조하기로 하고 고소취하 성명을 내도록 하고, 같은 기독교끼리 너무 지나친 행동은 서로 삼가하자고 중간에서 화해하라는 파도 있었다.

박 태선측은 대의명분을 세워 일방적으로 혼음시인이 아닌 부인광고를 발표하니 백씨 부부는 더욱 노하여 검찰에 고소를 하여 혼음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原理原本 1952년

丁得恩 / 鄭得恩

金百文の教えについて

김백문의 ‘섹스 타락론’, 무엇을 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