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得恩

丁得恩 / 鄭得恩 1897-1958년

의 原理

< 大聖心祈禱院 >

1958년     世宗文化社刊

嚴攸燮編  • 新興宗教文庫<12>

嚴攸燮編

大聖母라는呼稱啓示記錄文
(白雲道帥自筆) ↓

大聖心祈禱院長  丁得恩女史


 


 

新興宗教文庫 <12>   目次 

< 大聖心祈禱院篇 > 

一,  刊行에際하예 (序)

二,  盡報및資料    (一)

三,  沿革과紹介   (三)

四,  教理要約      (一 一)

五,  結     語        (八匕)


新興宗教文庫刊行에際하여


沿革婁 紹介

朴泰善
丁得恩女史
朴乙魯氏
四 二 七 八 年 = 4278 = 1945

金百文氏(1917 – 1990)
方好童氏
三角山
四 二 七 九 年 = 4279 = 1946


七、八、九      7-9頁

이매에 延大神學部 學生 金翰어라는 靑年이 찾아오고、金翰氏의 傳道로 季要漢助師 를 알게 되있으며 當時 延安에서 復興集會를 引導하고 있던 季助師는 시울에 나와서 朴泰普長老(當時執事)夫婦를 傳道하여 約 一個처동안같이 祈禱하다가 意見上 術突로 朴長老夫婦는 그들의 故鄕인 水色으로 돌아가고、丁女史一派는 三角山으로 다시 울라가시 祈禱生活을 繼續하는 한편、各自個人 傳道에 힘쓰다가 經濟的打擊이 너무도 심하여 四二八三年 [1950] 三月頃에 三角山을 내려와시 모였던 信徒들은 不得己 分散하게 되었다。

그 해 穴月에動亂이 일어나게 되어 이곳 저곳으로 避難하였다。避難生活中 靈的啓示 는 늘 그들이 避할곳을 가르켜주었으며 찾아오는 隣近住民에게 爆擊時間과 場所등을 비롯한 여러가잔 豫言을하여 너무나도 適確하게 들어맞는 바람에 오히려 住民들의 誤 解까지 사개 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收復이 되자龍山區 元曉路二街에 에덴幼稚園을 創設하여 戰爭孤兒를 收容하는 한편 굶주린 洞民에게 쌀을 配給하고 죽을 쑤어 나누어주는 둥 救護事業을 해서 住民들의 好感을 산일도 있었다고 한다。그뒤 漢江을 건너 平澤郡 辰季面 戒始里에서 長老敎會 를 指導하다 敎會內粉으로 異端視 當하여 서울 黑石洞에서 李龍道牧師의 親成이 經營 하는 敎會를 指導하다가 다시 서울로 들어와서 龍山에서 隱身하는 중 金演氏를 알게 되어 근의 協助아래 龍山區 新契洞에 現 祈禱院을 創立하게 되었던 것이니 그것은四二八六年 二月頃아었다。

經濟的 基盤이 없는데다 社會的 핍박을 받아가며 祈轉生活을 繼績해 나가는 그들은 아직도, 이곳 저곳으로 옮아다니머 祈轉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초라한 巡뚫뽑라고나 할 가― 敎勢의 振張을 위한 積極的인 傳道活動도 計劃하지 않고 心身의 修해에만 專念 하는 그들은 세상에서 잊어진 存在들이지만 한두사람의 有名한 宗敎指導者들이 잠시나 마 그곳을 거쳐가면서 적지않은 恩惠를 받은 일이 있다는、그 하나의 事實만으모도 우 리나라 新興宗敎界에서 記德되어져야 할 것이다。

以上 大聖心禱院이 더듬어 나온 治革을 대강 記錄하였는데 끝으로 同祈禱院의 信 仰信條를 結介하면 다음과 같다。

★大聖心新禱院의 目的

聖經은 敎理이니라
(가)心身의 修鍊으보써 血肉的 慾心을 起越하고 心中에 이수님을 모시고 피와 살 이 全幅으로 基督化하기 위하여 修道함을 目的함

(나)聖經을 土合삼아

(다)예수께서 律法(율법)이나 先知者(선지자)를 페하러 온것이 아니라 完全(완전)케 하러 왔노라 하사 完全(완전)케 하시기 위하여 받으신 苦難(고난)을 힘입어 先知者(선지자)의 豫言(예언)하신 말씀을 한말씀도 어김없이 履行(이행)하심을 본받아.

(라)우리는 基督(기독)의 敎訓(교훈)을 守行(수행)하기 위하여 그의 豫言(예언)[너희는 나보다 큰일을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루려 心身(심신)의 修練(수련)을 쌓아 主(주)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하여 大聖心(대성심)의 뜻을 成就(성취)하려는데 있음
<아멘>


大聖心祈禱院

의 原理

筆囗
責述
方丁
好得
童恩

   創造論       (一一)

   復歸役事   (三六)

   生의 原役  (五五)

(以下  原文그대로의無修正稿임 = 編者)


一一    11頁

一 創造論


二九    29頁

예수말씀에 받는者 外에는 알수없도다。(馬太一〇章二七節二八節)내아버지의 뜻대로 啓 示를 받은者라야 안다고 하셨는데 馬利亞는 받아서 알면서도 모르는체하고 가만이 있 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馬利亞의 失策이라。(삼우엘)의 母親한나는 여호와께 求하여 아들올낳아 하나 님께서 自己祈禱를 들어주심을 感謝하여 그 子를 一生 여호와께 드렸으니 「삼우엘」은 祭司長 「엘니」앞에서 자라며 하나님올 섬겼노라。어려서부터(삼上一章二六、二八、二章一八 節)하나님의 聖殿에서 長成하여 하나님을 섬기니 百姓이 알기를 하나님의 先知者로 알았다。(삼上三章一九、二一節)여호와는 삼우엘에게 함께하시여 그에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게 안이하였다。勿論 예수님에 말씀도 하나님께서 땅에떨어지게 하신것은 없으되 먼저 받은者가 한나와같이 自己責任을 못하였기때문에 하나님의 子를 淫亂한者외孫인 木 手의아들로 國民이 認識하게한것이 잘못이다。馬利亞는 聖潔하여 스스로 分別하여서 예 수룰 聖殿에들이고 그를 奉視들려 着實한 하나님의 夫人노롯을 했어야 하나님께서 처 옴잃은 사랑올 찾으시고 聖潔외血統에 子孫올 繁植하였올것이나。「해와」룰 도로 삼킨바 되었도다。

그러함으로 歷史以來로 외아들 예수만 남은바되었도다。 그러면 四千年歷史를 두고 거 둔結果가 예수 하나뿐이다。예수는 어데서 무슨일을 하시여 歷史以來 하나로 낱아나셨나? 그는 아담以來로 여러先知者가 勘當치못한것을 이겨물리치셨다。馬太三章 一三節로 브

三〇    30頁

면 예수約翰에게 洗禮룰받고 廣野로 나가셨읍니다。聖神에게 있끌여 魔鬼에게 試驗을 받으실세 四〇日을 밤낫 주리시더니 試驗하는者가와서 試驗을 始作하였다。(試驗에對한것 온 나종 말슴들이고)먼저 四十日이란 날字에對하여 왜 四十日올 주리시며 試驗올 받 으셨나? 하면 四字數는 太初에 에덴東山에 完全히 展開되는 數字인것이다。하나님一位 아담一位、헤와一位、子一位、四位가 結成되었던들 하나님의 創造攝理는 完全을 일우었을 것이다。이 四位 完全結成을 못하였기때문에 에덴東山은 破壤도 고 人類는 空中權勢者에 게 잡히고 말았다。그러함으로 四字를 腦頭에두고 復歸役事를 하시게되었다。歷代를 計數 하니 보다쉽게 戒命을보아도

一 하나님外에 다른神을 두지말라。

二 너를爲하여 외지할것올 만들지말나。

三 하나님울 忘靈되히 일칼지말나。

四 肉畜까지 安息하라。

하셨다。이 安息世界 만드는것이 하나님의 뜻이였다。四가 完全結成이면 平和다。그러한 것올 猜忌하는者가 이것올 完全結成못하게 妨害를 노는것이다。近四千年期間올무고 妨害 者에 妨害로 延長되어 나은歷史를 四〇日로 短縮식혀놓고 예수혼자 勘當하시는 役事이 시다。



三穴    36頁

二 復歸役事

 

37頁   三七

「아부라함」歷史로 부터 生覺할지라도 創世以來의 役事全部를 想像할수 있으니「아부라함」외 아비는 偶像장사를 하였다。왜 하나님은 偶像장사의 子息을 澤하셨나? 이는 魔鬼 가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하나님은 둘도 없는 사랑하는 「아담」을 마귀에게 잃으셨 으니 이를 復歸하는 뜻에서 魔鬼외 가장 사랑하는 偶像 장사의 아들을 뽑아 내셨다。그리하여 其에게 福올 주노라 하시고 言約외 條件物로 祭物을 가져오라 하션다。이祭祀를 잘 드렸으면「아부라함」以後「가나안」땅에「이스라엘」은 人類외 大祭祀長阈율成立하였을 것이다。그러나 祭祀失敗로 말미암아「에덴」東山을 이루지 못할뿐만 아니라 그외 子孫은 四百年間이라는 日辰數의 奴隸노릇올 하지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그러면이 失敗된 祭祀외 祭物에는 어떠한 뜻이 包含되어 있다는 말인가? 三年된 암소 三年된 羊수컷 암염소 山비들기 집비들기 새 끼세가지 種類라고 할수있다。이것올 時代로區分하면 所成期 長成期 完成期——三期로 區分하며 相對格으로 말하면 비들기는 聖神

三八   38頁

對象이요 山비들기는 사탄對象이다。염소는 淫亂罪代償이요 羊은 贖罪祭物이요 소는 肉 身代償이 되는것이니 이 祭祀로 말미암아 所成 長成 完成兼하여 完全을 成就하려는뜻 이였으나 長成 完成各期는 갈라서 께꿍할지라도 所成期를 갈으지 못하였으니 「아담」時 그 대로라「아담」當時에 失敗를 回復하려는 約條物인 더 第一 重要한 所成期가 不精한 그 대로서는 前開할수 없움으로 다시 延長한것이니 卽 나무밀이 썩었는데 그 나무가 잘 자라날수 있는가?



五五   55頁

三 生의原役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FwX2&fldid=2oNl&datanum=3

< 原理>

서기 1947년에 받은 계시를 丁得恩 구술하고 제자 方好童 받아 적었다고 전해지는 내용에다가 별도의 소개의 글과 맺는 말을 편집자 엄유섭이 덧붙여 서기 1958년에 출판한 90쪽의 자료

출판사: 세종문화사

현재 월간<현대종교> 자료실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고, 상당수의 영인본이 연구자들에게 보급되어 있는 상태임

목차

1. 간행에 하여 

2. 화보 자료 

3. 연혁과 소개 

4. 교리요약창조론, 복귀역사, 원리

5. 결론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FwX2&fldid=2oNl&datanum=4

丁得恩 口述 方好童 筆責 嚴攸燮 編著, <生의 原理>(세종문화사, 1958)의 13쪽에 나오는 墮落天使長의 사연:

(前略)其時 天使 長次 魔鬼「루스베리」라 함이 있었으니 嫉妬 者요 猜忌者다. 아담이 하나님의 恩惠로서 昌盛하여 많은 福을 누릴 때 이를 猜忌하여 넘어트리고저 였보기 始作하였던 것이 다. 全能者에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喜樂의 날을 보내는 것을 볼 때 貪을 내여 機會를 탈 괴휼을 꾸미였든 것이니 이는 곳 헤와 를 蹂躪하여 不義의 씨가 백기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人類를 모함에 쓸어넣은 原因이다. 全人類가 痛歎할 것인가 그렇치 안 타 忿해함은 聖神의 사람들이요 그의 일을 하고저 하는 者들은 憤함을 禁치 못한다.(下略)



문선명의 정체!  (1)

김명희 저

352頁

혈통복귀원리의 이론과 형성과정

혈통복귀 역사를 구상케 된 문 교주의 과거배경을 살펴 보는 것도 의의 있는 일이다. 1919년 기미 독립운동 이후 가중되는 일제탄압으로 평양지방에는 지하 깊숙히 잠복하고 있던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 이상한 주장이 나 돌기 시작했다.

에덴동산의 원죄의 장본인들이–아담·하와·천사장(루시엘)–타락의반대입장에서 그 원죄를 청산하는 피가름의 역사가 혼음원리의 원조를 이루고 있다.

피가름 원죄를 성서적인 뒷받침을 하여 계승해 온 새로운 성령운동의 기수였던 황 국주 (黃國柱) 에 의한 해방 후 평양의 광해교회 시대와 자칭 대성모 (大聖母) 정 득은 (丁得恩) 여인의 복귀원리의 혈분역사 (血分役事) 와 경기도 파주에 있던 이스라엘수도원의 성혈운동 (聖血運動) 김 백문 (金白文) 등의 계통을 문 교주는 다 거쳐왔다.

특히, 정 득은여인의 성서적인 이론을 자기의 것으로 도용·각색하여 실천무대에서 세계적인 혈통혁명을 부르짖고 나온 것이다. 1947년 정 득은여인의 구술 (口述) 로 그의 제자 방 호동 (方好童) 이 책임·집필한 “생의 원리” 는 통일교 원리해설의 원서 (原書) 라고 할 수 있다.

문교주는 1946년 초 정 여인이 주최한 대성심기도원의 집회 때 정 여인의 내의까지 세탁해 주는 등 충성을 보였고 정 여인의 속옷을 받아 재림주로 둔갑을 하고 나온 것이다.

문 교주는 1958년도에 청파동 통일교 본부교회에서 수 차에 걸쳐 정 여인과의 관계를 털어 놓았다. 즉, 40일노정의 피 묻은 빨래를 세탁하여 주면서 충성을 다 하고 그녀로부터 받은 축복을 이야기 했다.「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부인이다」라고 주장하는 정 여인과 문 교주는 복귀관계 (섹스관계) 를 가졌다고 수없이 말했으며 정 여인이 문 교주의 주관을 받아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여 악령에 걸려 미쳐서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죽었다고 하였다.

또한 27세 때 문 교주는 1946년 1월부터 6개월간에 걸쳐 겨기도 파주에 있는 김 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서 자기보다 세살 위인 김 백문으로부터 복귀원리의 영향을 받았다. 그 당시 김 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는 문 선명 뿐만 아니라 박 태선 · 나 운몽 · 지 용성 등 제씨들이 드나들었다고 김 백문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편리를 봐 주던 정계의 거물급 인사였던 김 모씨는 증언하였다.

김 백문은 황 국주에 의해 영향을 받았고, 1945년 12월에 평양으로부터 월남한 신령파 정 득은 (丁得恩) 여인의 대성수도원을 찾아 자신의 피가름 원리와 정 여인의 주장이 일치함을 발견했다.

353頁

문의 교리는 황국주 · 김백문 · 정득은의 이론

문 교주는 황 국주 · 김 백문 · 정 득은 등 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기식으로 이론을 구축하여 기로 해 놓은 것이 바로 원리강론이라는 통일교의 교리인 것이다.

문 선명교주는 1957년경에 김 백문이 동대문구 창신동 부근에서 노환으로 죽었다고 신도들에게 말했고 통일교인들은 김 백문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김 백문은 어엿이 살아 있다. 경북 칠곡군 인동면 출신인 김 씨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결혼 · 이혼 등 경력을 갖고 있고,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 1번지 청수교회란 간판을 걸고 그 나름대로 신도들을 이끌고 있다.

1954년 서울 성동구 흥인동 집회시에 정 득은여인으로부터 피가름을 받은 정 여인의 제자인 김 한 (金漢) 씨가 문 교주를 찾아 와 문 교주의 추종신도인 간부 유 모씨에게 “문 교주가 피가름 섭리의 혼음교리를 가지고 있으니 당신은 조심하라” 는 경고의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간부 유 모씨는 “우리도 이미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해서 돌려 보냈다” 는 것이다.

문 교주는 일찍이 16세 때인 1936년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하늘의 계시에 의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예수가 못다한 사명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억만 사탄과 영적으로 싸워, 사탄의 정체와 인간타락의 비밀을 하나님으로부터 알아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믿기 어려운 거짓이며 증거능력이나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타락한 인류의 조상이며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룰 수 있는 신천신지의 세계의 조상이요 참 부모인 그의 사명노정으로 보아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딸인 하와를 사탄에게 잃어 버림으로 아들인 아담을 빼앗겼듯이 하나님은 사탄세계에서 딸을 찾고 아들을 찾아 세우는 섭리로서 문 선명을 제3아담으로 세우기 위하여「나는 여호와의 부인」임을 자처했던 대성모 (大聖母) 인 정 득은 여인과의 사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축복을 받기 위해 정 여인의 피 묻은 속옷까지 빨아 주었던 소위 40일노정은 제3아담으로 세움을 받기 위한 기간이었다고 문 교주는 제자들게게 설명했다.

354頁

‘원리강론’ 속의 혈통복귀 주장

원리강론 227페지 “중생론” 에서「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서 두 번 태어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우리를 낳아 주는 부모가 아니면 아니된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들을 원죄가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 선의 부모는 누구일것인가?」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가 없는 것이다.따라서 선의 부모가 타락한 인간 가운데 있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모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여야 하는 데 그렇게 오셨던 분이 예수였다. 따라서 그는 타락한 자녀들을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지상천국을 이룩하시기 위하여 참 아버지로 오셨던 분이시다.」

「그런데 아버지 혼자서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는가? 타락한 자녀들을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해서는 참 아버지와 참 어머니도 계셔야 하는 것이다. 죄악의 자녀들을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 그 참 어머니로 오신분이 바로 성신이시다.」

또 원리강론 230페지에서「부모의 사랑없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성신의 감동에 의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면 영적 참 아버지이신 예수님과 영적 참 어머니이신 성신과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영적 참 부모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그를 믿는 신도들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주입되어 새로운 영적 자아로 중생케 되는 것이니 이것을 영적 중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영 · 육이 아울러 타락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육적 중생을 함으로써 원죄를 청상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 중생에 의한 육적구원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재림하시게 되는 것이다.」

또 원리강론 389페지에는 재림주를 중심한 실체 가나안 복귀노정이란 제목에서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혈통관계가 꾸미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가지고 하나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비밀을 성서에서 알아 보기로 하자」

또 원리강론 388페지에 보면「예수님은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원죄 없는 독생자로 오셔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 (接) 붙이어 한 몸되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복귀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 부모로서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접붙여서 원죄를 벗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창조본연의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하시는 역사를 우리는 중생이라고 한다」

원리강론 389페지에 보자.

「아무리 잘 믿는 기독교 신도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내려오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원리강론 전편 제4장 제1절) 이와 같이 기독신도들은 하나님 앞에 혈통이 다른 자녀이기 때문에 양자가 되는 것이다 (롬8 : 23).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한다」

이상과 같이 장황하게 통일교 교리서인 “원리 강론” 에서 인용한 바를 풀이해보면, 문은 예수의 재림체요, 그의 후처인 한 학자여인은 성신의 화신 (化身) 이며 참 부모로 등장하는 문 교주 부부가 원죄있는 타락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중생시켜야 할 사명이 통일교의 중심사상이요, 피가름 역사의 강령으로 된 복귀론이다.

그러므로 혈통혁명의 교리적 근거가 원리강론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장하기 위한 외적 활동이 바로 반공입네, 국위선양활동입네, 하는 정치적인 제스츄어이고 여기에 사람들이 미혹되고 상당수의 지성인들과 지도급인사들마저 통일교의 속셈을 모르고 나타난 외형적인 활동만 보고 애국적이니 국가이익에 보탬이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통일교 신도들은 “나의 맹세” 속에서도 명시 된 바와 같이 참 부모 (문선명과 한학자) 의 혈족임을 자랑하는 조직화된 혈맥의 계보 속에 극비리에 되었고 추종인의 다수는 혈통섭리와 같은 내막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의 외적활동의 이념과 활동에 매혹되고 있다.

355頁

접신녀 (接神女) 정득은의 ‘생의 원리’ 전문

원리강론에 있어서 타락론과 복귀원리의 원서라고 할 수 있는 정 득은여인의 “생의 원리” 를 보면 피가름의 꼬리가 더욱 적나라하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통일교 원리강론의 원본인 정 득은의 “생의 원리” 를 요약.

생의 원리는 창조론 · 복귀역사 · 생의 원역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고 있는데, 1947년에 정 여인의 구술을 방 호동이 받아 쓴 글을 그대로 책에 옮긴 것이다. 특히, 창조론의 “혈통적 신의 백성” 이란 글의 내용을 보자 (원문 그대로 싣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당신의 백성을 번식하시려고 예정하셨던 섭리이다. 이러한 뜻을 루스벨 당시 천사장이 알게 되어 이브를 유혹하여 마귀에게 자식을 낳아 주셨으니 이가 곧 가인이라. 아담에게는 이부 자식이다. 아담도 하나님께로 버림을 받았으니 결국 마귀에게 지배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씨의 결과를 전수치 못하였다.

이브가 사탄의 딸이 되므로 사람의 딸이란 명칭을 받게 되고 사람의 딸의 아릿다움에 미혹되어 생명까지 버렸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금일에도 있다. 하나님의 자식들이 사람의 딸의 아릿다움을 보고 저희 마음대로 장가가고 시집간다 하였다 하니 하나님의 딸들이라 칭함을 받도록 회복하여야 한다.

혈통적 선민의 번식은 사람으로부터나 노아로나 아브라함으로나 예수님으로 시작을 하였어도 결과를 맺지 못하였다. 택한자의 영감적 번식이 시작하여서 그 결실은 육신에 돌아가고 생능적 신 (生能的神) 에 결과적 결실을 수락치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수락목적을 섭리에 두시고 잃은 것을 회복하시는 데 선지자와 전도사, 예언자를 보내시어 교도했다. 사탄도 그의 회복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힘을 다 해 갖은 유혹을 다 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증거판이 성경이란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 “이는 이로, 피는 피로, 손은 손으로, 목숨은 목숨으로 갚으라” 한 법이 있다. 이것이 잃은 것을 찾기위한 율법이라는 것이다. 하와를 잃었으니 하와를 찾아 하와로 하여금 아들을 찾으려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예언자이며 선지자인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의 징조를 보라.「처녀가 아이를 낳으리니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아이를 낳게 한다는 뜻이 곧 하와가 누시엘에게 유혹되어 가인을 난 것을 회복하려는 뜻에서 행하여진 일이다.

당시 유대법령에 그러한 불법자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는 법이니 약혼자가 시집가기 전에 잉태하였다는 것은 선한 일이라 할 수 없다. 네가 이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는 명령 앞에 죽음을 무릎쓰고 범한 것이다. 이것은 죽음에 내려 간데서 뽑아 내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생명을 내 걸고 용감하게「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다 이룹소서」하고 승락한 마리아의 믿음이 야말로 현대여성에 비추어 볼 때 대단하다. 할 것이 다하여 사탄의 씨가 박힌 것같이 하나님의 씨는 박힌다.

마리아는 예수를 배에 싣고 보니 목숨을 잃어 버릴것이 겁났던 것이다. 즉시 일어나 산으로 도망하여 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에게 피신하였으니 그들은 반갑게 만나서 서로 축복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신의 섭리를 받아 순종하고 아들을 낳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는 그 태도를 완전히 정하지 못하였다. 거룩한 뜻을 받고도 세속에 매어 거룩히 구별 못하였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게 된 원인이 요한에게 책임도 있지만 마리아의 잘못이 더 많은 것이다.

요한은 자기가 맡은 사명을 못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거니와 마리아도 요한을 목 베게 하였고 예수도 십자가에 달리게 하였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고, 요셉과 살지 않았어야 하며 또 신의 뜻을 따라 예수를 완전케 하여야 할 것이며 수종들어 충실한 모친이 되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수방관하였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자기가 할 의무를 못하고도 예수에게 그 무엇을 구하고자 할 때, 그는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라고 배척을 당하였다.

예수가 나의 때가 안되었나이다, 하신것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이 알아 줄 때가 안되었나이다 한 뜻이다. 또 어머니 조차도 몰라주니 어찌 믿지 않는 자들이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하와를 찾았고 소생까지 얻었으나 먼저 장성한 불의에 눌리어 완성을 맺지 못한채 역사를 남겼으나 결실은 맺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왔다고 한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몇 천년 역사를 두고 회복의 섭리를 자기일신에 지니고 수취 (收取) 하시려는 것은 너무 약하다고 쓰였으나 반대로 너무 사랑이 많으셔서 권능을 나타내기 위하여 돌아와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완전히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멸시하여도 세인 (世人) 을 불쌍히 여겨 너희가 듣지 않으나 내가 좀 더 참자하시는 은혜로다. 인내는 소망을 낳고 소망은 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결실케 하나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전기 마리아는 무슨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느냐 하면 마리아가 자기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그 책임 무엇이냐?

마리아는 무슨 책임을 못하여서 예수로부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는 말을 들었는가? 자기 몸을 동정녀로 하나님께 드린 일은 성공이었으나 그 태도를 완전히 결정 못한 것이다.

이는 무엇인가? 처음 수태하게 한 자가 참 남편이니 본부 (本夫) 에게 찾아 가야 할 것이다. 헌데 요셉과 살았으니 하나님께서는 동정녀를 찾았다가 다시 잃은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사탄의 이부자식 (異夫子息) 을 만들어 키웠도다.

사라는 첩의 자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니 이를 당할까봐 첩의 소생을 추방하였다. 본 자손을 키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본 자손으로 구별하여 주신 씨이니 귀중히 여겨졌던 것이다. 또 이삭의 소생에서와 야곱이 복중 (腹中) 에서 다툴 적에 리브가는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지시하실 때 “네 복중에 두 족속이 들었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며, 작은 자가 큰 자를 주관하리라고 한 지시를 받고 리브가가 야곱을 지극히 사랑하였으며 또 에서가 받은 축복을 뺏어 야곱에게 주었으며 에서가 그를 죽이려 할 때 외삼촌네로 피신시켜 보호하였다.

또 아비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으려 할 때 발각되면 나를 저주하리이다 하니 그 저주도 내게로 돌리라 하고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계시하던 말씀을 기억하여 자기할 바 의무를 다 하셨던 것이다. 또 여 선지자 미리암은 모세를 키웠다. 강폭한 바로왕의 탄압중에 죽음을 각오하고 모세를 살렸고 그를 키울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셨던 것이니 모세는 바로 궁전에서 호화롭게 자라며 그 나라 법률을 다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불리한 환경일지라도 마리아는 예수를 수태할 때 어떠한 입장에서 수태하였는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보면 그 장에 수태역사가 기록되어있다.

“장차 거룩하신 이가 너를 덮으리니 나시는 이가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여러 나라의 머리가 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한 어마어마한 말씀을 받고 그를 수태하고 자기 행동을 구별치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을 다 하였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도 예수님을 존중히 사랑하시어 하나님의 아들로 출세하시게 하여야 할 것을 목수인 요셉의 아들을 만들었고 또 그의 앞 길을 막는 일을 하였도다. 누가복음 2장 4절에 보면 얼마나 아기 예수님 자신은 배워야 할 것을 알고 성전에서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 묻고 배우고 하셨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찾았다고 하니 누가복음 2장 49절에 예수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나이까?

예수 자신은 12살 때에 성전에 이써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을 알고 성전 안에서 장성하시려 하셨던 것이다. 그런것을 모친 마리아는 이를 촌으로 데리고 가고야 말았다. 모세가 바로의 궁에서 교육을 받은 것과 같이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마리아는 그를 성전 안에서 키우도록 했어야 할 일을 목수의 집에서 키우고 말았다.

수태할 때 들은 말이 있는 데 잊어버렸을 리는 만무하리라,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못하였나이까?란 말을 듣고 마리아는 찔림이 없었을까? 마땅히 증거하여야 할 일을 증거하지 아니하고 나사렛 촌에 목수의 자식을 만들어 멸시와 천대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짓밟히게 하였도다. 모세는 바로의 궁중에서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웠어도 이스라엘 민족이 듣지 않았는 데 목이 곧은 사람들이 목수의 말을 듣겠는가? (요4 : 3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쫓아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내 양식이라 (요5 : 36).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여기 있으니 내가 하는 일은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 사람에게 증거를 지켜도 증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증거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이 날마다 행하시고 행하는 것을 의롭게 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신 스스로가 나타내며 증거하는 것이 다하였으면 아무의 증거도 필요치 않다.

사람의 증거보다 더 확실하다 함을 말씀하셨나니 마리아가 증거하여 주지 아니하고 요한은 또 길을 예비하러 와서 길을 예비하지 못하였으니 하러오신 그 일을 못하게 됨을 아시고 근심은 끊임이 없었다. 요한은 안식에 들일 길을 예비하러 왔고 예수는 안식을 가지고 쥔으로 오셨는 데 전자도 아니믿고 후자도 멸시를 하였도다.

요한복음 5장 25절, 죽은 사람이 하나님 아들의 소리를 들으니 듣는 자도 알아내리라 하심이 죽은 자를 알리러 오셨나니 그가 이 알리고자 하는 답은 어떠한 답인가? 말씀을 듣는 자로 이에 산자가 아닌가? 죽은자가 말씀을 들을 수가 있는가?

즉, 음부에 나려 간 자 곧 죽은 자요, 이는 언제 죽은자인가? (엡2 : 1).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 (엡2 :2). 그때의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속을 쫓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니 이 권세 잡은 자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 속에 지금 일하는 신이라, 하나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는 누군가?

하와가 하느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사탄의 말을 순종하여 사탄의 자식이 됨으로 음부에 내려 안침을 받아 공중권세 잡은 자의 수하에 있는 것을 끌어내어, 즉 죄로 죽은 것을 다시 알리려 하심이니 곧 태초에 하나님이 코에 바람을 불어 넣으니 생명이 된지라 한 이 사람으로 마귀의 자식되었던 것을 불러 살리려는 일을 하시려 오신 것이다.

예수 말씀에 받는 자 외에는 알 수 없도다 (마10 : 27-28). 내 아버지의 뜻대로 계시를 받아야 된다고 하셨는 데 마리아는 받아서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리아의 실책이다. 사무엘의 모친 한나는 여호와께 구하여 아들을 낳아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 주심을 감사하여 그 아들을 일생 여호와께 드렸으니 하나님을 섬겼노라.

어려서 부터 (삼상1 : 26-28, 2 : 18)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성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알기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았다 (삼상3 : 19-21). 여호와는 사무엘에게 함께 하시어 그의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게 아니 하였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땅에 떨어지게 하신 것은 없으되 먼저 받은 자가 한나와 같이 자기 책임을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음란한 자의 자손인 목수의 아들로 주민이 인식케 한 것이 잘못이다. 마리아는 성결하여 스스로 분별하여서 예수를 성전에 드리고 착실한 하나님의 부인 노릇을 했어야 하나님께서 처음 잃은 사랑을 찾으시고 성결한 혈통의 자손을 번식하였을 것이다.

하와를 도로 삼킨 바 되었도다. 그러므로 역사 이래로 외아들 예수만 남은 바 되었도다. 그러면 4천년 역사를 두고 거둔 결과가 예수 하나 뿐이다. 예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어 역사이래 하나로 나타나셨나? 그는 아담 이래로 여러 선지자가 감당치 못한 것을 이겨 물리치었다.

마태복음 3장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가셨다. 성신에게 이끌리어 예수에게 시험하는 자가 와서 시험을 시작하였다. 시험에 대한 것은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먼저 40일이란 날자에 대하여 왜 40일을 굶주리시며 시험을 받으셨나 하면 4수는 태초에 에덴동산에 완전히 전개되는 숫자인 것이다.

하나님 1위, 아담1위, 하와1위, 아들1위, 4위가 결정되었던들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완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 4위를 완전결성을 못하였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파괴되고 인류는 권세자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러므로 4자를 두뇌에 두고 복귀역사 (復歸役事) 를 다하게 되었다.

역대를 하니 하나 보다 쉽게 계명을 보아도

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

② 너를 위하여 의자할 것을 만들지 말라.

③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④ 육축까지 안식하라고 하셨다. 이 안식세계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4수가 완전결정이면 평화다.

그러한 것을 시기하는 자가 이것을 완전결성 못하게 방해를 놓은 것이다. 그 4천년간을 두고 훼방자의 방해로 연장되어 나온 역사를 40일간 단축시켜 놓고 예수 혼자 감당하시는 역사이다.

이상은 정 득은의 생의 원리를 부분적으로 가감없이 장황하게 인용하였거니와 그 이유는 통일교의 복귀역사가 바로 이 정 득은이 생의 원리에서 표절했음을 입증하려고 하는 시도이다.

360頁

문선명의 원리는 정득은 교리의 표절

문 교주가 계시로 받았다는 원리강론은 결국 무식한 정 득은이란 접신녀의 교리의 표절인 것이다.

더구나 정 득은의 “생의 원리” 에서 복귀역사를 보면 통일교의 탕감복귀 이론이 바로 정 득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 정 득은의 주장을 들어본다.

「아브라함의 아비는 우상 장사를 하였다. 왜 하나님은 우상 장사의 자식을 택하셨나? 이는 마귀가 가장 사랑하는 아담을 마귀에게 잃으셨으니 이를 복귀하는 뜻에서 마귀의 가장 사랑하는 우상 장사의 아들을 뽑아 내셨다. 그리하여 그에게 복을 주노라 하시고 언약의 조건물을 가져 오라 하셨다. 이 제사를 잘 드렸으면 아브라함 이후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은 인류의 대제사장국을 성립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실패로 말마암아 에덴동산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은 4백년간이라도 일진수의 노예노릇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러면 이 실패한 제사의 제물에는 어떠한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인가?

3년된 암소, 3년된 숫양, 암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 등 세가지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시대로 구분하면 소성기 (所成期) · 장성기 · 완성기의 3기로 구분하여 상대적으로 말하면 비둘기는 성신대상이요, 산비둘기는 사탄 대상이라, 염소는 음란죄 대상이요, 양은 속죄제물이요, 소는 육신대상이 되는 것이니 이 제사로 말미암아 소성 · 장성 · 완성, 겸하여 완전을 성취하려는 뜻이었으나 장성 · 완성 각기로 갈라서 깨끗할지라도 소성기를 가르지 못하였으니 아담이 그대로라, 아담당시의 실패를 회복하려는 약조물인데 제일 중요한 소성기가 부정한 그대로서는 전개할 수 없으므로 다시 연장한 것이니 즉, 나무 밑이 썩었는데 그 나무가 잘 자라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시초가 부정한 것은 아브라함도 회복치 못하고 4백년이란 고역의 날자를 복락동산 대신 받았다. 그리하여 3대에 걸쳐 야곱으로 하여금 가족적 구원의 성을 쌓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의 칭호를 받았다.

이 이스라엘의 아들로 말미암아 애굽에 들어가 번성한 백성을 인도해 내는 역할을 한 사람이 모세라는 대선지자이니 모세는 이스라엘을 우상국 애굽에서 인도해 냈거니와 예수는 인류를 사탄의 사슬 앞에서 끌어낼 임무를 가지고 당신이 먼저 가시덤불에서 나오는 역사를 당하시는 것이다.」

정 득은여인의 이 “생의 원리” 를 부분적으로 읽어 볼 때, 통일교 원리강론과 흡사함을 발견할 것이며, 연대적으로 정 여인의 생의 원리가 문 교주의 원리해설보다 수년 앞서 있으므로 문 교주가 정 여인에게서 그 교리적인 구상을 얻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362頁

김백문의 성신신학과 원리

김 백문의 성신신학은 1954년 3월에 출판된 것이었다. 그 책 첫 페이지 “啓” 에 이런 글이 있다.

「3위가 일체적으로 기독교 구원역사를 도모하심에 있어서 각위의 시대적 역사성을 고찰한 바, 구약이 부위 (父位) 의 역사시대로 되어진 것과 같이 신약은 자위 (子位) 의 주동적 역사시대로서 볼 수 있음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역사요 결국 삼위분의 섭리적 구원성과를 삼위분의 역사상 역사적 (役事的) 순리로 보아 최후 말로 결과시기에는 성신위 (聖神位) 가 하실 분담적 사명문제로 알게 된 때다」이상과 같은 김 백문의 이론은 통일교 교리의 책임분담 섭리로 본 시대구분과 같은 점에서 김 백문의 교리를 표절했다고 볼 수 있다. 즉,통일교 원리강론 102페이지 혈통문제 (죄악성 유전문제) 에서,

「회개에서 초혈통 (超血統) 에 실적을 보아야 할 것이 회개전은 예컨대 박씨 혈통에 최악성격자가 제3자로서 씨족을 달리 보리만큼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의 성체문제 (聖體問題) 인 성혈 (聖血) 문제에 결과적인 의의가 관련되는 사실인데 그리스도의 성혈은 속죄에만 가치적 본의가 다함이 아님은 원죄 · 속죄 다음으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와의 혈통성을 느끼게 하는 즉, 혈통적 갱결연 (更結椽) 을 위한 성현인 것이다. 그러면 이상 논한 김씨 자손이 순 혈통적으로 변하여서 그 다음 예수의 혈통성격을 닮아 새로남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통일교원리에서 본 강생론의 의미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본원리 (창세론 · 타락원리 · 복귀원리) 가 있고 이는 김 백문과 문 교주가 동거했던 1946년도의 5개월간에 문 교주가 김 백문의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터득한 김 백문의 교리라고 볼 수 있다.

1955년 당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혼음파동 사건으로 인하여 노량진 오집사댁에 피신하고 있을 때, 책꽂이에 진열되어 있는 김 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 를 보고 놀라면서 오 집사에게 저 책이 어떻게 여기 있느냐고 하면서 불태워 없애 비리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책을 보면 자가의 독창적이라고 하던 원리가 이미 논리정연하게 미리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원리가 그 책에서 도용된 것을 신도가 간파하지 않을까 라는 의구심 때문인 것이다.

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스라엘수도원에 정 득은여인이 1945년말 부터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문 교주는 이스라엘수도원을 중심한 신앙적인 수련기에 교리적인 체계를 김 백문으로부터 습득하였고, 1950년 말경 문 교주가 흥남형무소 복역 후 평양에 DT는 김 종화여인 집에서 정 득은여인을 만난 일이 있다.

그후 그들은 각기 월남하였고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정 득은여인이 문 교주를 찾아 헤매였으나 문 교주는 정 득은을 피해 다녔다. 정 득은은 문 교주의 부산 수정동집회소와 서울 흥인동집회소에 자주 나타났다. 그 때마다 모자협조관계론 (母子協助關係論) 을 정 여인이 주장했고 문 교주는 자꾸만 정 득은 여인을 피하였으니 그가 교리를 내세우는 원리가 남의 것을 표절 · 도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림주격인 김 백문은 세례요한 격의 문 선명의 활동을 멀리서 지켜 보았고 통일교 신도들 중에 골수분자인 박 모씨 같은 사람은 김 백문을 따라 통일교를 버리고 청수교회로 옮기기도 했다.

김 백문은 자신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재림주임을 신도들에게 암시했고 문 선명을 세례 요한격으로 장차 자기를 증거해 줄 섭리적인 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김 백문의 제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문 교주는 김 백문의 성서적인 이론을 계승했다.

363
정득은 · 박태선 · 문선명의 관계

삼각산에 위치한 대성신기도원의 원장 정 득은 (丁得恩) 여인은 1897년생으로서 48세 때인 1945년 11월경에 평양으로부터 월남하였고 그녀를 추종하던 신도들은 그녀를 대성모 (大聖母) 라고 불렀으며 그녀는 병든 자들을 기도로서 쾌유시키는 영통력의 소유자로 평양에서는 장로교회에 다녔던 인물이다.

그녀는 8 · 15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비밀리 모이고 있던 신령집단인 황 국주의 광해교회 (廣海敎會) 에도 자주 나갔다. 뿐만 아니라 평양 장재대교회의 우 하선장로의 부인이었고 현재도 통일교의 문 교주가 오늘의 발전이 있기까지 옥 세현여인과 신앙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였다.

하루는 정 득은여인이 옥 세현여인댁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오후 3시에 이남으로 내려가라」는 계시를 받고 그가 평소에 사사하던 박 을노 (朴乙魯) 씨에게 가서 상의한 바, 그 역시 동일한 계시를 받았노라고 증거하여 시간을 맞추어 월남하게 되었으니 그때가 엄동설한의 겨울이었다고 한다.

그는「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찌 남으로 내려가라 하시나이까?」라고 기도 했던 바「예수 모친 마리아도 추운 때에 호적하러 갔노라, 그러니 너도 가거라」하는 계시를 받고 용기를 내어 떠나 왔다고 한다.

월남도중에 하늘의 계시를 어기지 못하여 입고 있던 의복을 피란민들에게 하나씩 차례로 다 벗어주고 홋치마 저고리바람의 초라한 모습으로 가까스로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한 그녀는 삼판동 (현 동자동) 에 가서 20여명의 신도를 모아 집회를 가지고 한 편으로는 파주에 있는 김 백문의 집회에도 가끔 참석하게 되었다.

1945년 12월 말경 김 백문과의 상도동교회에서 방 호동 (方好童) 씨 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후원 아래 1946년 1월에 삼각산에 집회장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니 바로 이곳이 한 때 항간에 물의를 빚던 삼각산기도원이었다.

이때 김 한 (金漢) 이라는 연세대신학생의 전도로 이 요한교사 (현 통일교 간부) 를 알게 되었고 이 요한은 서울에 나와서 박 태선집사 부부를 전도하여 약 1개월간 같이 기도하다가 의견 충돌로 박 태선부부는 그들의 집인 수색으로 가 버리고 정 득은여인 일파는 경제적인 타격이 너무 심하여 1950년 3월경에 삼각산을 내려 와서 모였던 신도들은 부득이 분산하고 말았다.

그후 1950년 6월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수복이 되자 용산구 원효로 2가에 에덴유치원을 창설하여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한편 구호사업을 주민들에게 하였고 1950년말경 1 · 4후퇴당시 문 선명이 주관하던 평양 육교리 간판 없는 광야 교회의 주인이었던 김 총화여인 집에 나타났다.

그후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계시리에서 장로교회를 다니며 봉사하다가 교회 내분으로 이단시 당하여 서울 흑석동으로 올라와 이 용은목사의 친척이 경영하던 교회에 다니다가 한강을 건너 서울에 들어와 용산에서 은신하고 있던 중 김 연 (金演) 을 알게 되어 교회의 협조를 받아 용산구 신계동에 기도원을 창설하게 되었으니 그 때가 1953년 2월경이 었다.

그녀는 경제적인 기반이 없는 데다가 사회적인 핍박을 받아 가며 기도생활을 계속해 나가면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초라한 순례자라고나 할까? 그들은 적극적으로 크게 확장을 위해 전도생활을 하지 않고 오직 심신의 수련생활만 전념했다.

현재 한국기독계 이단자들로서 가장 큰 물의를 빚고 있는 통일교의 문 서명이나 전도관의 박 태선도 극히 짧은 시일이나마 정 여인을 피가름역사의 모체격 (母體格) 인 원조 (元祖)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정 여인이 운영하고 있던 대성심기도원은 어떤 곳인가, 그 내막을 살펴 보자. 대성심기도원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성경은 교리니라」
① 심신의 수련으로 혈육적 욕심을 초월하고 심중에 예수님을 모시고 피와 살이 전폭으로 기독교화 하기 위하여 수도함을 목적으로 함.
② 성경을 토대로 삼아
③ 예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러 왔노라 하여 온전케 하기위하여 받으신 고난을 힘입어 선지자의 예언하신 말씀을 한 말씀도 어김없이 이행하셨음을 본 받아
④ 우리는 기독교의 교훈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의 예언「너희는 나보다 큰 일을 하리라」하신 말씀을 이루려 심신의 수련을 쌓아 주의 거룩하심같이 우리도 거룩하여 대성심의 뜻을 성취하려는 데 있음 <아멘>

‘동방의 의인’ 이라 자처하고 나온 박 태선의 혼음역사를 김 경래가 취재하여 1957년 3월 17일자와 3월 18일자 세계일보 지상과 실화 (實話) 잡지 동년 6월호에 보면 혼음역사의 계보와 실상은 다음과 같다.

박태선의 혼음
「박 태선 일파의 혼음은 1947년 5월 이후에 평양에서 남하해 온 정 득은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혼음파의 본부인 삼각산에 주거를 정한 정 여인으로부터 정여인의 교리에 감복한 박 태선부부는 수색에 있던 자기 집을 집회장소로 제공했고 그들은 당시 수색장로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정 득은여인의 연하에 추종신도인 이 태윤 (李泰允, 1958년대 통일교신도였음) 과 박 태선을 중심으로 3개월 동안 기성교회 신도들이 모였으며 박 태선은 정 여인에게 설교를 받아 김 백문에게 성서해석법을 배워서 영체교리 (靈體敎理) 를 체계적으로 세웠는 데, 박의 영모론 (靈母論) 은 바로 여기에 근러하고 있는 것이다.

50대의 중년여인인 정 여인은 먼저 삼각산기도원을 중심한 세 사람 김 한 · 방 호동 · 이 수완에게 혈분 (血分) 을 하였고 김 한 (金翰) 은 민 은순 (閔恩順) 여인과 혈분하였고 민 여인은 복귀된 후에 그의 남편과 육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이혼을 당하였고 민 여인은 다시 이 태윤과 혈분을 했다. 이 태윤은 다시 백 목사 부인인 장 애삼 (張愛三) 과 극비리에 혈분을 햇으나 방 호동 (37세) 만은 혈분을 맺지 않았다.

이 수완은 26세인 원 경숙 (元慶淑) 과 혈분하였고, 원 경숙은 박 태선과 혈분하였고, 원 경숙은 박 태선과 혈분하였다. 박 태선은 존귀한 성혈 (聖血) 을 먼저 자기 집안에서 행하기로 마음 먹고 그의 장모와 형수에게 권한 것이다. 박 태선의 처는 원 경숙과 같이 이 수완에게 혈분을 받고 박 영창에게 권하였다. 박 영창의 말로는 박 태선의 처와 처음에는 잘 안되다가 두 번째 겨우 되었다 한다.

행하는 방법은 교조적인 정 여인의 입회하에 정 여인이 기도를 드리고 나서 하는 혈분행위가 진짜라고 하며 남자가 여인에게 혈분할 때는 남상여하 (男上女下) 이고 여자가 남자에게 전할 때는 여상남하 (女上男下) 가 된다」(이와 같은 사실은 통일교의 합동결혼식 후 부부행위와 같음). 이러한 방법으로, 혈맥을 중심한 피가름역사의 교리는 비밀리에 확산된 것이다.

또한 김 경래의 취재에 의하면 기성교회 목사 백 X X의 부인 장 애삼여사와 이 태윤과의 영체교환이란 명목의 성관계를 통해 장 부인은 유인되어 신흥종교단에 입단하고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해 일체를 남편인 백 씨에게 고백했다.

백 목사는 이 말을 듣고 심신의 고민을 견디기 어려웠다. 목사 체면에 이혼을 할 수도 없어 김 경래에게 고민하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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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의 딸, 우리 모친은 인간 이하 ···

그후 1967년 2월경 백 목사부부는 서울에서 혼음파의 주역인 정 득은여인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딸은 자기 모친을 비난하면서 남녀신도들을 삼각산에 모아 놓고 영체교리를 해설했으며, 우이동에서 신도 20여명을 데리고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 모친은 이간이하인 불결한 행동을 아무도 권고하는 이도 없고 법에 고발하는 자도 없다고 한탄하더라는 것이다.

백 목사 부부는 정 득은의 딸을 만나기 전에 박 태선을 두 번 만났으며, 그 달에 백 목사는 부산에서 성민육아원 (聖民育兒園) 을 경영하였으나 재정란으로 막대한 부채를 걸머지게 되자, 백 목사의 부인은 혼음동지인 박 태선을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백 목사는 정 득은여인의 딸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혼음교리를 신앙하는 정 득은의 유혹에 빠졌던 그의 부인의 피가름사건을 세간에 공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957년 3월 3일 백 목사는 서울 원효로에 있는 전도관에 가서 정문에 버티고 서서 들어가는 신도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박 태선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그런 개소리 말라, 그놈은 제 장모와 형수를 XX고 원 경숙이와도 혼음한 놈이다. 박 태선의 처도 박 XX란 놈과 혼음했다. 당신네들을 속인 뱃장 검은 놈의 정체를 이제 당신네들에게 보여 줄테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 처도 혼음파에 속했었소, 이제 와서는 대중 앞에 공개하고 회개하려 하오.

영체파의 교주도 살아있소. 여러분들이 전도관에서 떠남으로 박 태선을 회개하도록 결심을 가지시요」그때에 그 광경을 모여서서 바라보던 박 태선 신도들과 길 가던 사람들은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백 목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설마 하니 그리스도를 업고 예수 사명을 한다는 신성한 교회 교주가 제 장모와 형수와 혼음했다는 말인가?

백 목사가 그대로 서서 계속 전도관 문안으로부터 광신도들이 달려나와 백 씨를 에워싸고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백 씨는 곧 경찰에 고소하여 폭행과 혼음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니 이것이 바로 김 경래기자의 취재로 세계일보에 특종보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박 태선은 신문광고란에 이를 부인, 반박성명서를 내고 유력한 정계인사들을 동원하여 무마공작을 벌리는 한편, 육아원을 원조하기로 하고 고소취하 성명을 내도록 하고, 같은 기독교끼리 너무 지나친 행동은 서로 삼가하자고 중간에서 화해하라는 파도 있었다.

박 태선측은 대의명분을 세워 일방적으로 혼음시인이 아닌 부인광고를 발표하니 백씨 부부는 더욱 노하여 검찰에 고소를 하여 혼음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문선명의 정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