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무엘: 제가 받은 피드백에 답하여 2015

박사무엘: 제가 받은 피드백에 답하여 2015

             ▲ 박씨 가문과 함께 있는 사무엘 (좌측)

저의 비디오 프레젠테이션이 HWDYKYM (How Well Do You Know Your Moon blog) 에 공개된 이후, 그 내용에 대해서 제가 해명을 위해 답하고 싶은 질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문선명 목사의 살아있는 아들들 중 둘째로 나이가 많은 아들입니다. 저의 이복형 文聖進 문성진 씨는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키가 작은데, 이는 키가 크지 않은 최씨 가문 쪽 가족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또, 저의 아버지도 키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저는 소송 기간 중 통일교 측 변호사들로부터 부자감별 목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요청받은 적이 없는데요, 이는 소송의 양측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걸 생각해보십시오: 왜 통일교가 저의 어머니 催淳華 최순화 씨 그리고 저와 비밀협정을 맺기 위해 그렇게도 많이 애를 썼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거짓말쟁이들이라면, 통일교는 그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비디오는 제 삶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감정적이었죠 – 그래서 짜증나실만하게 훌쩍거렸고요), 그리고 제한된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다루어야 했기에, 저의 프레젠테이션을 읽어내려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진행 방법이었습니다. 저의 좋은 친구인 Donna Orme-Collins 가 주기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쪽지 카드를 건네주었지요. 이 친절한 도움 이외에는, 그녀는 저의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 전혀 지도, 지시하거나 강제한 부분이 없는데요, 이는 제가 제 아버지의 성격을 좀 닮아 고집스럽고 남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의 큰 후회 한 가지는 그녀가 말한대로 몇십년 전 솔직하게 앞으로 나서지 못한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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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독한 부활의 길에 서있는 선생을 위해서, 나의 마음에 빛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

2. “이름의 첫 글자를 경 慶 (남자아이라면) 자 그리고 연 妍 (여자아이라면) 자를 써서 문씨 가문의 이름 짓는 전통을 따르라고 보희 (박) 커플에게 전하라.”

문선명이 최순화 (애니) 에게로 보낸 우편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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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강간은 보통 타인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범해지는 성관계 또는 다른 형태의 성적인 삽입을 포함하는 성폭행의 한 종류이다. 강간 행위는 물리적인 힘, 강요, 권한의 남용에 의해서, 또는 법적으로 유효한 동의를 할 수 없는 사람, 예를 들면 의식이 없는 사람, 무력화된 사람, 또는 동의를 할 수 있는 법적 연령 이하의 사람 등에게로 행해질 수 있다. 강간이라는 용어 자체는 종종 성폭행이라는 단어와 교체 사용된다.”

저의 어머니는, 성이라는 주제가 그냥 다뤄지지조차 않았던 시대와 문화 속에서, 좋은 집안환경에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일들에 관해 아주 무지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를 가르치는 선생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그를 저의 어머니에게 힘과 권력을 행할 수 있는 위치에 놓게 했습니다. 아시아 문화는 서양에 비해 선생을 숭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는 또한 키가 겨우 5피트 정도인 저의 어머니에 비해 훨씬 크고 강했습니다. 한국에서 법적 동의 연령은 만 19세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저의 어머니를 범한 후, 그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으며, 특히 그녀의 어머니 李得三 이득삼 (저의 할머니) 씨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종교적 훈련을 받으면서, 비록 오늘날까지도 그 정신적인 충격의 기억이 남아있음에도, 그녀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섭리” 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슬픈 현실은, 이 세상엔 성폭행을 당했지만 웬일인지 정상참작 또는 단순무지의 사유로 마치 본인들이 책임이 있다고 느끼게 된 여성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보면서, 성폭행을 당한 모든 여자분들이 마음 속으로는 진실을 알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 정신적인 충격을 안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대로 믿을 권리는 있지요 – 하지만 많은 경우에 한 개인의 믿음은 실제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 한 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63 빌딩은 예전 최씨 가문이 소유했던 기업인 대한생명 (현재는 한화생명으로 알려짐) 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저는 워싱턴 DC 에서 지난 7월 열린 ICSA 컨퍼런스에서 저의 프레젠테이션을 하였습니다. 여러모로, 저에겐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또 이지적으로 중요한 분수령이 된 행사였습니다. 저는 ICSA 의 코디네이터 분들, 스태프 분들과 참가자 분들의 사랑, 지원, 진실성 그리고 지식의 수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Steve Eichel 박사, Michael Langone 박사와 같은 분들과, 그에 더불어 정신건강전문가들, 심리학자들, 연구원들, 그 외 제가 정말 존경하는 Eileen Barker 박사와 같이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학자들께서 신흥종교의 역학 관계를 연구하고, 이 모임들의 현 신도들과 전 신도들이 그들의 경험을 다스리고 그로부터 치유되는 과정을 도울 수 있는 놀라운 체계를 제공해주셨습니다.

혹자가 ICSA 가 단지 미화된 “신앙을 버리게 하는 자들” 일 뿐이라고 매도한다면, 그것은 그 본인의 무지함의 깊이를 보여주는 일일 뿐입니다. ICSA 는 비영리단체이며, 참여하는 심리학자들, 정신의학자들 그리고 그 외 전문가들은 다른 전문직업을 유지하면서, 이 일을 보수 없이 진행합니다. 이 중 많은 분들은 본인 스스로 이단종교에 관여해본 적이 없으나, 그러한 모임들에 의한 피해를 보았고 그런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돕고, 변호하며 치유하는 데에 관심을 둡니다. 저는 하레 크리슈나 교단에 대해서, 어떻게 그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관행을 개혁하고 좀 더 투명성을 가지고 운영하게 되었는지를 배우고 특별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의 바램은 통일교가 그러한 변화를 본따 변하는 것입니다.

▲ 문선명 과 최순화

제가 저의 비디오에서 넌지시 밝혔듯, 문씨 가문은 전세계에 600억 달러 정도 추정 재산을 지니고 있습니다 (워싱턴 DC 에서 통일교 송사 진술 녹취록에 따르면). 통일교의 과장하는 성향을 감안해서, 실제 금액은 그 절반 정도라고 생각해도, 엄청난 금액의 돈이며, 옳게 사용된다면 통일교 성도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돈입니다. 통일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자초한 재정적인 대참사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통일교의 영적 공갈 행위는 일본 성도들과 비성도들 모두에게로부터 몇십억의 돈을 긁어냈습니다. 일본과 서양에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통일교의 모금 캠페인과, 십억불의 돈을 들인 왕궁 (미국 국회의사당보다 큰 건물) 이 있는 清平 청평에서의 金孝南 김효남 씨의 귀신을 쫓는 행위 때문에 재정적으로 황폐해졌습니다. 김효남 씨 본인은 5억불에 가까운 교회 자산의 횡령 혐의로 인해 한국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사건에서 법이 승리하리라고는 별로 기대하고 있지 않은데요, 이는 한국과 같은 곳에서는 법치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고, 또 아시다시피 통일교는 돈이 많거든요.

일본과 서양에서의 헌신적인 1세대 신도들은 허약한 건강 상태에 모아둔 돈도 없고, 통일교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60대, 70대 노인 분들이십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짐이 되었고, 그 자녀들 중 많은 사람들이 통일교를 떠나 세상에서 자리를 잡고자 하지만, 결국은 부모들을 간호하는 세대로서 통일교란 늪에 다시 빠지고 맙니다. 이것은 통일교의 영적 공갈 장치로 인해 많은 1세대와 2세대 통일교 신도들이 겪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 韓鶴子 한학자 와 최순화

왜 지금 이러는 것인가? 사무엘이 뭘 원하는 거지? 돈 때문에 이러는 거겠군!

1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요.

제가 ICSA 에서 지난 2014년 7월에 프레젠테이션을 하였을 때, 저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통일교의 진짜 역사에 대해서 기록을 바로잡는 것이었고, 둘째는 우리의 소송에서 드러난 대로 지켜지지 않은 과거의 약속들에 대해서 저의 아버지와 통일교에 책임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간, 우리는 파산을 겨우 피해내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법적 조치를 위한 자금을 모을 수 없었고, 저는 실제로 집을 압류당했습니다. 통일교는 부패와 소모전을 통해 저를 끝까지 짓눌러 버리고자 했던 그들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강압적으로 꾀어져 서명한 비밀보장계약이 뉴욕주 법 아래 절대로 집행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그 어떤 유능한 변호사에게도 명확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는 법체계를 장악할만한 돈이 있었기 때문에, 거짓된 사실을 꾸며내어 사실로 둔갑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朴普熙박사 박보희박사 가 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주장한 허위증언을 그 어떤 법적 이의 제기도 없이 인정시켜 냈습니다. 하고 많은 사람들 중 박보희박사 그 본인이야말로, 저의 아버지가 1965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저의 어머니와 지냈던 방이 바로 박보희박사 의 옆방이었고, 그의 집에서 제가 태어났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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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화 와 박사무엘

듣자하니 오직 자신만이 유일하게 진실로 순결한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유일한 진짜 하나님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신하기로 천명한 문선명 목사 부인에 의한 저의 아버지의 유산의 해체와 파멸을 지켜보는 것은 박보희박사 에게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박보희박사 은 언제나 우리 아버지의 충실한 병사였는데요, 하지만 저는 그와 그의 가족도 역시 환경의 희생자였으며 그 충절이 이리저리 끌려다녔음을 압니다. 저는 통일교 때문에 모두 고통을 겪은 저의 예전 박씨 가문 형제자매들을 향해서는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밖엔 없으며,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문선명 목사 부인의 최근의 선포들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의 정신나감을 보여주고 있고, 저의 아버지를 미화된 정자 제공자 수준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주께서 정말 쓰러지셨습니다 – 도움을 받아서 말이죠.

한국, 일본 그리고 서양에 있는 통일교는 金永雲 김영운 씨를 비롯하여 저의 어머니 쪽 가족, 최원복 씨, 그리고 셀 수 없는 다른 이름없는 성인들을 포함해, 여성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 여성들은 그들의 친구와, 가족과, 결혼생활을 통일교를 위해서 포기했지만, 극심히 혹사되었고 한국의 남성 지도부와, 저의 아버지를 섬겼던 그 어떤 여자에게도 질투와 의심을 품었던 한학자 씨에 학대당하기까지 했습니다. …

저의 본래 핵심은 이제서야 솔직히 앞에 나섰던 저의 동기를 다루고자 함이었습니다. 문선명 기업에 법적 방도로는 패배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 책임을 물리기 위한 저의 바램에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 또한 신도들이 통일교에 대해 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돕기 위해 제가 가진 것은 제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 뿐입니다. 솔직하게 앞에 나선 우리의 (저의 어머니와 저의) 동기가 순전히 돈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순전히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가 저의 아버지를 위해서 “재정적으로” 얼마나 포기했는지 그들이 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품위가 남아있다면, 그들은 입을 닫을 것입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저의 어머니가 통일교를 떠났다면 그녀에게 그의 비지니스 그룹의 주력 회사인 대한생명 (수십억불 규모 회사) 을 넘길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박씨 가문으로부터 데려와서 통일교에서 떨어진 채로 한국에서 키울 준비조차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럴 수 있는 능력과 권리가 있었고, 저의 존재란 비밀이었기 때문에 통일교가 그를 막을 방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를 막은 유일한 것은 저의 아버지를 향한 저의 어머니의 헌신이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원한 대로 되었기를 바란 적이 여러번 있는데요, 그랬다면 적어도 최씨 가문 비지니스 그룹과 저의 할아버지의 유산을, 저의 삼촌의 탐욕과 통찰력 부족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모피게이트 (furgate)’, ‘대한생명’ 또는 ‘崔淳永’ ‘최순영’ 을 구글 검색해보시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아버지를 지지하는 데에 있어서 저의 어머니에게 경제적 기회 비용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녀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그녀의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유린당한 기회 비용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죽었고, 시간을 돌려서 저의 어머니에게 다시 그녀의 인생을 되돌려줄 힘이 없습니다; 그에게 개입당하거나, 아들을 포기하도록 강제당하거나, 어둠 속에서 사는 삶을 살도록 매도당하지 않은 그런 인생 말이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폭로가 다른 분들이 힘을 되찾고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80년 이래의 대한민국, 허욱과 Terence Roehrig (2010)

South Korea Since 1980 by Uk Heo and Terence Roehrig (2010)

1999년, 또다른 정치 스캔들이 한국인들을 실망시켰다. 이른바 모피게이트 스캔들은 신동아 그룹의 소유주인 崔淳永 최순영 씨와 검찰총장 김태정 씨가 연루되었다. 최순영 씨는 1998년 체포되었고 자본도피죄로 기소되었다. 대한민국의 법에 따르면, 자본도피 – 많은 양의 자본을 해외로 옮기는 행위 – 는 나라에 꼭 필요한 투자 자본을 빼내는 행위였기 때문에, 불법이었다. 이 사건이 수사 진행되는 동안, 최 씨의 부인은 김태정 씨의 부인에게 암암리에 그녀의 남편이 최 씨를 관대하게 대하도록 설득해달라는 의미에서 비싼 모피 코트를 사줌으로써 뇌물 행위를 하였다. 야당에서는 이 스캔들을 폭로하였고, 검찰총장이 연루되었으므로 독립된 특검 수사를 요청했으며, 검찰청이 이를 은폐 시도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9 게다가, 여당 의원 정형근 씨가 안기부와의 연계를 통해 대중매체를 조종하는 등의 정부 관여의 증거가 담긴 문서를 공개했다. 여당은 또한 안기부가 국회의사당 내 본부에서 불법적으로 야당의 활동을 감시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10

9 Y. Youn. “1999년의 대한민국: 냉전 유산의 극복” Asian Survey 40 (2000년); 164-71.

10 N. Kristof, “잠긴 문은 부서졌고 서울의 의원들은 첩자 소동을 겪다,” 뉴욕타임즈, 1월 4일, 1999년.

9 Y. Youn. “South Korea in 1999: Overcoming Cold War Legacies” Asian Survey 40 (2000); 164-71.

10 N. Kristof, “A Locked Door ls Broken and Seoul Lawmakers Have a Spy Furor,” New York Times, January 4, 1999.


박사무엘 비디오의 대본